갑자기 잠이 오지 않는다.
시계는 최고의 숫자를 넘긴지가 꽤 지났는데...
머리속의 필름이 몇장 스쳐 지나간다.
'일어나 기록해 두어야지, 아니야 내일을 위해 자야돼'
마흔보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직원을
두고 하려고 조그만 가게를 하나 내었는데 하다보니 내가 모두 떠 맡
게 되었다. 가게 일을 하면서 새로운 철칙이 하나 생겼다. '밤에는 꼭
자야돼' 그런 부담 때문에 일어나 쓰기보다 잠을 청해야 하는 나 자신
이 조금은 초라해진다.
나름대로 두 권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3년전 부터 문화센터를 드나들
며 남이 만들어주는 사진첩보다 내 마음을 담아 놓는 활자체의 앨범을
만들어가는 자부심도 꽤 컸었는데 지난 가을부터 공백이 생겼다.
공백과 여백은 분명 비슷한 말이지만 사전에는
공백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음, 여백은 글씨나 그림이 있는 지면에서
아무것도 없이 하얗게 남아있는 부분이라 설명되어 있다.
공백은 가난하고 여백은 부유한것 같다. 나는 항상 후자를 연마하며
살아온것 같은데...
일은 계속하되 얽메이지는 말자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유대인의 격언에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는 말이 있는데 풀어놓
기 좋아하는 성격이 벌써 손가락이 몇개는 오므라드는 느낌이 든다.
장사라고 모두 그렇게 살지는 않을텐데 나는 아직 소인의 틀을 벗어나
지 못함을 고백하며 이제 다시 대인이 되기위한 훈련장으로 가기 위해
필기도구를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