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11시에 기차역에 내리니
저만치 남편이 서있었다.
얼른 딸아이의 가방을 받아드는 남편!
나를 보고 피곤하지? 하며 씩 웃는다.
그저께 서울 큰애가 있는 원룸에 갔었다.
장마가 오기전에 커텐,이불빨래도 하고,
김치도 담궈놓고 반찬 몇가지도 해놓고,
옷장도 정리하고...
그리고, 방학한 작은애와 같이 내려왔다.
큰애가 서울로 대학갔을때 조그만 원룸을 얻어
자취를 했었다.
남자애라 반찬 걱정때문에 한달에 한번 서울로
올라갔는데 하루치기로 다녀와야했다.
내가 집에 없으면 빈집에 들어가기를
너무나 싫어하는 남편때문에,
아니면 아예 못가게 하기때문에....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12시40분에 도착해서 바로 배추사들고
들어가 앉지도 않고 배추 절여놓고
빨래꺼내어 빨아놓고 청소하고,
김치담고 가져간 반찬정리해놓고
빨래걷어다 개어놓고, 시계를 보면 4시가 다되었다.
밥먹을 시간도 없이 커피한잔으로 때우고는 또,
부랴부랴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후 5시 기차를 타고
밤 10시에 돌아오곤 했다.
2년을 그렇게 당일로 서울로 다니다가
아들이 3학년겨울이었던가 오후에 다시 내려가는 엄마가
안쓰럽고 미안한지 대신 지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더니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하루 주무시고 가면 안돼요?"
간청인지 요구인지 대들듯이 말하는 아들에게
못이기는듯이 허락했고, 그후로는 아들덕(?)에 1박2일로
서울을 다녀오게 되었다.
내가 없는 첫날은 어김없이
술이 곤드레가 되어 자정이 훨씬넘게 집으로
들어갔고, 다음날은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시간만 꼽으며
마누라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울간첫날에 새벽1시쯤 집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제는 일찍 퇴근해서는 기차타고 오는데 딸아이 핸드폰으로
계속 '지금은 어디냐'고 전화를 해댔다.
숫제 딸애는 전화기를 나를 주며 엄마가 받으라했고,
네번째 걸려오는 전화를 기차칸통로에서 받으며
제발 전화좀 그만 하라 했더니 아예 역에서 기다리겠다했다.
집에 있을때는 내가 입만 열면 잔소리한다고
그렇게도 싫어하더니만,
마누라 잔소리 안들으면 날아갈것 같다더니 웬일이냐 싶었다.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모르겠다만,
남편의 지나친 관심속에 묵은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는것일까.
나는 짐짓 모르는채 새침한 목소리로
"나 없으니 잔소리 안듣고 속이 시원하죠?"
남편은 들은채도 않고 딸아이 어깨를 감싸고 앞서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