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서너번씩 내가 다니는 출퇴근길은 정해진 곳 가지 말고
그대로 달리라고 유혹을 한다.
지난 봄 땅거미 내려앉은 저녁나절에 마주오는 차들도 하나 없고
오직 나 혼자 몇 십분을 달렸다.다가서는 산등성이 친구삼아
벚꽃 터널의 주인공이 되어 한껏 기분에 젖어들어 콧노래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채 느끼기도 전에 벚나무 가로수에서 벚꽃들이 날리니
내 자동차로 아스팔트위로 수없이 떨어지는 작은 꽃잎들로 도로가
환해질 지경이었다.
탄성을 지르며 벚꽃잎 맞으며 달리니 한순간 이대로 멈추지 않고 달려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올해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잦았다.
긴 비 그치고 맞은 아침은 한폭의 명화였었다.
강에는 물안개 피어오르고 상큼한 산은 가까이 다가와 인사하고
풀이 죽어 고개숙였던 누드비키아 꽃은 다시 방실방실 웃으며
인사하니 비갠 아침 다시 소생하는 자연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나에게 발걸음 돌리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 맞은 가을빛은 찬란한 영광이었다.
어제 느끼지 못한 빛의 변화가 하룻밤사이 일어난것이었다.
도로 가로수마다 하늘로 뻗은 붉은빛과 노란빛이 아직 추수하지 못한
벼들이 쏟아내는 빛깔과 어울려 정신이 없었다. 먼 곳으로 굳이
가을을 만나러 가지 않아도 황홀함에 빠져드니 차를 세워서
벚나무잎과 은행잎을 받으며 놀고 싶었지만 뒤따르는 차들로
인해 아쉬움 접고 출근을 했다.
유난히 은행나무와 벚나무가 많은 근무처는 작은 울타리 전체가
가을속에 파묻힌것 같았다. 일찍 출근한 남자직원들도 들어 가지
않고 떨어지는 은행잎 어깨위로 받으며 서 있는것을 보니
모두들 나와 같은 마음이여라...
추녀와 추남들로 서로 부추기며 노란 얼굴되어 서 있는 가운데
그 옛날 가을이 되면 우는 연인이 있었다고 회상하는 중견 동료의
아련한 웃음에서 오늘 아침 내가 만난 가을은 유혹과 회상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