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이껍질입니다.
아내의 ID와 비밀번호를 어렵사리 알아서 닫힌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을 부르자니 차마 목이 메어 그냥 외마디 비명을 질러 봅니다.
......!!
스물넷 알토란같은 나이에 못난 내게 전부를 던져 한결같은 맘으로
겨드랑이를 훈훈히 덥혀 준지 20년입니다.
이백자 원고지를 채우듯 차곡차곡 아이 낳고,홀로 된 시어머니 임종
까지 15년을 수발하고,천방지축 마골피 잘난 서방 물에 빠질까 돌보느라 수국같이 고운 얼굴엔 잔주름과 흰 머리가 늘어 갔습니다,
아들 녀석이 작년 6월 수시모집에 붙어 고려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했을
때,화안히 피어나던 아내의 찬란한 눈매를 난 잊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젤 이쁜 딸아이를 끼고 자던 아내의 철부지 모습은 지금의
나에게는 떠올리기 괴로운 행복의 편린입니다.
껍질이의 돌이키기 어려운 잘못-- 그 잘못 때문에 비둘기 구구대던 스윗홈은 어디 가고, 아내는 오늘도 쓸쓸한 퇴근길을 터벅터벅 내딛을
것이고 아이들 재잘대던 식탁에 물끄러미 앉아 쏟아지는 한숨과 원망에 눈물 떨구고 있음을 압니다.
최근 들어서야 아내가 이곳에 올려 둔 글을 죄다 읽으면서, 쫑알쫑알
다툰 일도 많았고 심사가 뒤틀려 울컥대던 적도 있었으나 그 모든 일들이 사랑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아내는 평범하려고 노력했으나 껍질이는 환상을 쫓다 지금에사 잡초가
되어 뒤늦게 철이 들고 있음에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추석때 오랫만에 집에 들렀을 때, 아내는 다 찢어진 우산도 우산이라고 새로 산 체크무늬 셔츠를 입혀주며 끼니 거르지 말라고 당부하더군요.껍질이는 눈길 줄 곳을 몰라 허공만 바라 보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는 통회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사람아,나의 아름다운 사람아!
앞으로 몇가지 견디기 어려운 고비가 남아 있으나 조금만 참아 주구료
돌아가신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 덕택인지 혹은 당신의 염원 때문인지
조만간에 과분한 일자리를 얻어 내 능력을 다시 펴게 됩니다.
이젠 말을 앞세우지 않고 익어가는 벼의 모습으로 당신과 아이들 앞에
나타나 행복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태울 것입니다.
바늘아! 내 사랑하는 사람아!
속 썩이지 말고, 좋아하는 비빔냉면 가끔 사 먹어가며 좋았던 시간만
기억하고 있거라. 예기치 않은 순간에 행복은 다시 찾아 올꺼다.
괜찮다.
껍질이는 어떤 순간에도 낙천적이고 희망을 붙드는 녀석임을 잘 알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