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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14 - 부실기업은 살리면서 농민은 죽이나...


BY 닭호스 2000-11-22

"도대체 앞길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전날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농민들은 22일 텅빈 논과 배와 사과 등이 나뒹굴고 있는 들판에서 "농촌 경제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도덕한 기업으로 인해 생긴 부실을 메우기 위해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는데 그 10분의 1만 농촌에 써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의 무성의를 성토했다.

전남 나주시 금천면에서 수확한 배 80톤을 절반도 팔지 못해 저장고에 그대로 쌓아놓고 있는 장영배(50)씨는 "올해 농협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아 재배면적을 늘렸는데 생산비(7,000만원)의 절반도 못건다"며 "빚을 내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나주지역 3,700여 배 재배농가에서 생산된 배는 6만5,000톤에 달하지만 55%만이 지난해 절반 가격인 2만원(15kg상품)에 팔린 상태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 김명규(40)씨도 올해 4,000만원을 들여 방울토마토를 생산했으나 미국산 오렌지의 대량 수입으로 1상자(10kg)값이 생산원가인 1만4,000원의 4분의 1수준인 4,000만원선으로 폭락, 2,800만원만 건졌다.

벼농사와 축산농가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이홍근(34)씨는 "1만3,000여평에 벼농사를 지어 2,0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농기계 구입비와 자재.농약대를 제하면 실수입은 300여만원에 불과하다"며 "트랙터 구입비로 융자받은 6,000만원의 부채에 대한 원금 상환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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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전부 자기네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에 나와 앉았더라.. 그래서 고속도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엄마가 우리집으로 어제 들어서면서 한 말이다...

엄마가 오랫동안 삶의 근거를 일구었던 도시를 떠나 약 40여분정도 고속도로를 달려가야 하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아빠를 따라가서 존 말로 전원주택, 바른말로 촌집을 지어서 살기시작한 것이 벌써 햇수로 3년이다. 집을 짓고,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돼지를 잡고 잔치를 한 판 거하게 차려내었던 것이 내가 대학 4학년때인 98년 여름의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빠가 그곳에 단감밭 2500여평을 사두신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 남매가 대학에를 들어가고난 후, 집도 없는 그 단감밭에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들러서 단감나무 밑으로 난 잡초를 뽑고, 나무 껍질을 벗기는 등의 갖은 허드렛일을 하기도 하고.. 가을이면 제대로 안 된 농사지만 800여만원정도의 값에 밭을 뙈기로 넘겨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 때.. 우리가족은 비록 아빠가 단감밭에 투자한 돈을 은행에 묻어두었더라면 지금 그 돈이 새끼를 쳐 벌써 원금에 육박하던 돈이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지만..어느누구도 술도 담배도 안하시고.. 낚시나 골프 등의 여타 취미 생활이라곤 없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신 아빠의 색다른 취미생활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아빠는 위로는 단감밭을, 아래로는 자그마한 저수지를 낀 편평한 500평의 땅에 엄마와 아빠가 살, 그리고 나의 어린 딸 달이가 뛰어놀며 아름다운 外家의 추억을 간직할 30여평의 작은 집과.. 15평의 아담한 창고를 지으셨다...

그리고... 엄마는 당시 대학에 다니던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고..아빠를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그 이후의 기억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빠의 단감농사는 비록 아빠의 본업이 아닌 취미이긴 하였지만.. 아빠와 엄마의 노력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단감들이 팔리면서.. 우리 가족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다 주었다...

게다가 아빠가 제대로 된 취미생활을 표방하면서 본격적인 단감밭 일구기에 들어가자, 여기저기에서 돈 들어갈 일이 한없이 생겨났다.. 가물었던 여름, 밭 전체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공급하는 장치를 설치하는데 기백만원이 들어가고.. 또 무엇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단감밭 밑으로 목돈이 들어갈 때마다 깊어지던 엄마의 한숨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솟는다..

수확할 때, 박스 값이나.. 가위값, 저울값, 그리고 농약값, 게다가 풀을 벨때 쓰는 예초기는 하루 건너 한 번씩 고장이 났었다.. 그런 소소한 비용들.. 그리고 약을 치거나 수확할 때, 감나무 전지할 때마다 드는 많은 인건비들을 제하고 나면 항상 우리 가족은 적자에 시달리며 우리가족이 가졌던 실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따놓은 감을 창고에서 밤늦도록 불밝히며 선별기가 없이 일일이 손으로 재어 보고 선별하던 그 추웠던 가을날들.. 단감조합의 청년이 몰고온 작은 트럭에 15kg짜리 감상자를 백여개 실어보내고 돌아서는 우리가족은 피곤을 잊고... 가격이 얼마나 나올려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저수지모퉁이로 돌아가 사라지는 그 트럭을 불빛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아빠와 엄마는 지난해부터 감밭을 같은 동네에서 역시나 감밭을 일구는 한 젊은 부부에게 맡겼다.. 400만원씩을 받기로 한 지난해, 그 부부는 400만원과 굵은 감 몇 상자를 들고 우리집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는 그 감을 정성스럽게 싸서 고명딸이 들어가서 살기 시작한지 석달이 채 안되는 문턱높은 나의 시댁에 들고 오셨다.. 그제서야 나는 단감만 바라보면 눈물이 흐르던 지난날의 슬펐던 기억을 뒤로 한 채, 감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얼마전 내게 와서...그 아저씨가 한 해동안 정성스레 가꾼 감밭에 감을 따러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우리집 농사를 짓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게 될 것같다고 했다...

우리가족의 기쁨이 되었고.. 포근한 휴식처가 되었던 그 단감밭은 이제... 위기에 처해있다.. 어쩌면 감밭의 감나무들의 다 베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다른 나무들이 심겨질지도 모른다...


오늘 뉴스를 보니.. 어제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던 농민들의 대표 6명에게 영장이 청구되었고 그들은 구치소에 수감된 모양이었다.. 농민들의 그런식의 농성에는 난 반대다..그렇게 하면 자체의 출혈만 커질뿐이다.. 지금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나 죽을꺼야..나 죽을꺼야...내 말 안들으면 나 자살할꺼야..."
하는 행위와도 같다..

지금의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랑이 털끝만치도 없다.. 그와같은 자해행위는 정부가 최소한의 사랑이라도 가지고 있을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나라에 세상살이 녹녹한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저 윗분들이 좀 알아주셨으면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