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을소풍 가는 날!!
새벽 다섯시 반
알람벨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저만치 잠이 달아난다.
씻어둔 쌀을 안쳐두고 밥이 되어가는 사이에
머리를 감고 기초화장을 마친다.
헤어벤드로 머리를 모두 쓸어 올리고는 고슬고슬 지어진 밥으로
김밥을 만다.
가까운 곳에 새벽부터 여는 도시락집이 있었으면
누구네집 엄마처럼 두어줄 사다가 도시락에 담아 준다면
달콤한 새벽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아도 되겠지만,
우리 사는 동네에는 그런 곳도 없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럴때 한번 엄마의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부려보는 일도 재미나질 않는가?
집안가득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퍼질때 쯤이면
부시시 잠에서 깬 아이들은 저마다 들뜬 가슴을 안고
소풍날을 시작할 수 있을테니 ...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아침 풍경은
간밤에 내린 비로 조금은 스산해 보인다.
약간은 찬 기온이 스미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얇은 점퍼를 챙겨 입으라고 말한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점퍼를 잃어버렸단다.
언젠가 학교에 갈때 반팔위에 걸친 기억이 나는데 ...
한번은 학교운동장에 운동하러 갔다가 벤취위에 놓았는데 없어졌고,
또 한번은 옷가게에서 다른 사람의 쇼핑백에 주인이 잘못 넣어주는 바람에...
그러고 보니 벌써 이번이 세번째다.
두번째까지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난감해서
그냥 그냥 대충 넘어갔다.
이번에는 전혀 어디에다 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하여서
바쁜 아침이지만 성의껏 찾아보았는데 보이질 않는 것이다.
평소에 물건 잘 챙기기로 유명한 엄마로서는
아이들의 무신경함에 필요이상의 화가 나서 통제가 잘 되질 않는 듯 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잘 챙기겠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마음이 좀 누그러졌을텐데
아이는 끝내 한마디도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일체 시인을 하지 않고 있어서
머리를 묶어 주다 말고는 슬쩍 쥐어 박았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남편은 귀한 자식을 때리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도리어 화를 낸다.
어느 책에서 "부모중의 한사람이 자녀를 훈계할때
나머지 한 사람의 부모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아 주는 것이 자녀를 위하여 좋은것이다"
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책을 읽은 것은 나였으니
졸지에 내가 남편에게 훈계의 대상이 되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아침부터 혼란스럽다.
나는 단지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요즘 아이들
아까운 줄 모르고, 아낄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사소한 것이지만 자신의 물건은 소중한 것이란 걸 일깨워주고
항상 주변정리를 잘 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아이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의도였는데
남편은 단순히 귀한 자식 기죽인다며 심한 의견차이를 보인다.
아침부터 여러소리 하는 것이 좋을 게 없기에
그쯤에서 나의 입은 닫혔지만
좋은 기분으로 다른날보다 일찍 출발한 하루가 영 찜찜하다.
오전에 잠깐 창밖으로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비에
나는 또 아침의 점퍼소동이 떠올라 혼자만이 아는 웃음을 웃어 본다.
자신들의 물건 못챙긴 벌로 오늘 점퍼를 입고 가지 않았던 아이들이
지금 빗속에서 춥진 않은 것인지 편치 않은 마음을 들여다 보니
좀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내 자화상이 거기 있다.
엄마한테 혼나느라 머리도 못 묶고 소풍간 우리 작은 딸
지금쯤 점심은 먹었을까?
파아란 가을 하늘에다 헹여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문을 적어 본다.
저녁에 이야기해도 될 일을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자신을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싶다.
평소의 나답지 않은 돌발적인 행동에
나 스스로도 무척이나 놀랍고 실망스러운 아침이다.
저녁에 돌아가면 차분하게 앉아서 아이가 알아듣도록 잘 설명해 주어야지...
아침에는 엄마가 미안했다 말하며 품안에다 꼭 안아주어야지 ...
소풍 잘 다녀 오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