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5월의 따스함과 실크이불의 부드러움에 노예가 되어 침대에서 나른한 몸을 뒤척이며
새벽잠에 취해 9시가 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텔레비젼 볼륨이 얇은 고막을 흔들자
이에 질시하듯 여자의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고 울려 퍼졌다.
"시골 안 내려 갈 거예요? 벌써 9시가 넘었어요!"
얼마 전 가족들은 어머님의 생신을 고향에서 치르기로 약속을 하였었다.
원래는 평일이 어머님의 생신날이였지만 객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가족들의
형편을 생각하여 주말 연휴로 날짜를 앞당겨 어머님의 생신을 모시기로 어머님의
동의하에 형제들과 며칠 전에 결정을 본 터였다.
나는 나른한 몸을 일으켜 감긴 눈을 비비며 거실 소파에 앉아 귀향 길의 복잡한
교통상황을 상상하며 잠시 동안 아득히 먼 고향을 원망하고 있었다.
명절날이면 귀성 전쟁을 어김없이 치르며 수 없이 다녀온 고향에 이제는 이골이
날만도 한데 지금까지도 고향을 내려갈 생각을 하면 머리부터 아프다.
승용차에 오르면 오랜만에 어머님을 보고 다른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는
이번에는 몇 시간 동안이나 운전해야 고향에 닿을 수 있을까? 지겨운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혼자만 고향을 다녀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며느리와 손자, 손녀를 보지 못하는 어머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더 이상의 고행은 피하고 싶었고 마침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어 어머님의
섭섭한 심기를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손자를 볼 수 없는 어머님의 섭섭함을 생각하여 아들녀석과 동행하기로
계획을 하였는데 어젯밤까지 같이 가겠다던 아들녀석은 아침이 되자 마음이 변하여
시골에 가지 않겠다고 한마디하고는 만화 방송에 빠져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아들녀석과 동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짐을 꾸려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연휴를 맞이하여 여행을 떠나기 위해 터미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틈에 끼어 실로 오랜만에 혼자만의 나들이 기쁨에 취해 고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충동을 억누르며 고향행 티켓을 산 후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는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전용차로에 닿자 푸르름을 더해 가는 봄의
전령처럼 속도를 높혔고 닫혀있던 나의 마음은 녹엽들을 향해 활짝 열리고 있었다.
고향이 가까워 질 수록 푸르름은 더해가고 나의 마음은 녹엽들보다 더 푸르게
채색되면서 오랜만에 마음의 휴식을 얻는 것 같았다.
여섯 시간의 질주 끝에 버스는 고향 버스 터미널에 나를 내려 놓았다.
땅거미가 드리워진 고향 들길을 걸으며 어릴 적 뛰어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하늘
가득한 청량함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어두운 정적이 감도는 고향의 산들과
들판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눈앞에 펼쳐진 고향의 들판은 세상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도 넉넉할 만큼
넓어 보였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들은 백두산 보다 높아 보였으며 들판을 가르는
시냇물은 그 어떤 강보다 깊고 넓은 강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강 이름을 쓰라는 시험 문제가 나오면
"심지보" 라고 써냈고 또다른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을 "봉화산"이라고
답을 쓰기도 하였다.
담임 선생님은 이런 답들을 써낸 아이들이 어이가 없어 꾸짖고 매를 때리면서도
우스웠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어머님의 생신을 치르고 또 다시 나는 고향을 떠나면서 모처럼 고향의 봄 냄새와
어릴 적 추억에 취했고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까지도 가난하고 낙후된 땅이지만 내겐 고향이 있기에 잠시나마 마음의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안도감으로 고향을 떠나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