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마주 앉았다. 연인들처럼...
시간은 새벽을 지나고 어둠은 깊어갔다. 우린 적당한 취기에 올라 있었다.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의 지극히 사적인 얘길 하고 있었다. 딸이 하나 있고 부인은 없다고... 그래 내가 궁금해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궂이 그 얘길 할 필요는 없었는데 ..
근데 난 맘이 이상했다.한 가지 분명한건 알게 모르게 그에게 빠져드는 날 본것이다.
아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방 있었고 지난 밤 마신 술탓에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다. 지난밤 일을 떠올렸다. 난 그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비밀아닌 비밀을 혼자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날 이후 난 그의 연구실에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그런 내게 그는 작은 미소로 날 반겼고 붉어진 내 얼굴 횡설수설 내 수다를 재미있게 들어 주었다. 내게 왜 그런 호의를 베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도 내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학생과 교수, 우린 그 이상의 관계로 함께 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흘렀다. 어느새 또 한 학기가 끝난것이다.
겨울 방학이 다가왔다. 학교에서 마주칠 일은 줄어들었지만 우린 학교밖에서 정을 쌓아갔다. 그는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우린 함께 만나면 늘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새벽녘에 보는 바다, 폭풍우가 불어 닥친 듯 성난 파도가 치는 바다, 하얀 모래밭이 햇볕에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바다, 아무도 없는 파도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바다, 우린 그 어떤 바다의 모습도 함께 하며 같이 있었다. 난 그 바다를 보며 맘속으로 기도 하곤 했다. 언제 까지고 그와 함께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단 한 가지 날 미치도록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지울래야 지울 수 없고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기억 속에 다른 한 남자, 내가 지우려 했던 내가 밟아버린 그 남자가 그리웠다. 지금에 그 사람 기억속의 그 남자 두 감정 모두 내겐 아픔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