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일 가졌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내 소중한 생명을 내 눈으로 직접 만져도 보고 안아도 볼 수 있단 생각에 가슴 떨려 왔지만 결혼의 일상속에 안주하지 못하고 겉도는 내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덜컥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이 날 괴롭히기도 했다. 남편은 좋아하는 눈치였다. 당연한 일인걸 난 힘들어 했다. 결혼과 동시에 5살난 딸아이의 새 엄마로서의 나의 생활 또 새로 태어날 내 아기 두 가지 일 모두 내겐 삶의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린 남들 모르게 아주 긴 시간 연애를 했다. 횟 수로 4년, 요즘같이 금새 만났다 헤어지는 연인들의 스피드한 만남에 비교하자면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신참내기 교수였다. 컴퓨터 관련학과라 다른 교수들의 나이때에 비하면 젊은 교수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작았다. 우린 반 학기가 지나도록 그저 교수와 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학점도 그저 그런 학생이었고 얼굴 또한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었기에 그 사람은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 되었다. 또 한 과목을 그사람이 강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학기라 우리 학생들은 술자리가 많아졌고 운명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난 과친구 몇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층 창가 자리였다. 한 남자친구가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수님""안녕하세요" 그리고 잠시후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근데 좀 달랐다. 반 학기를 그가하는 강의를 들었는데 예전의 그가 아닌 듯 다정다감하게 느껴지는 그의 인상이 내 맘을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예전의 그는 강의 시간에 필요없는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명쾌하고 간결한 강의 그리고 학점관리에 철두철미한 교수로 소문이 나 있었다. 더 쉽게 말하면 깐깐하고 조금은 근접하기 어려운 교수님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오늘 사석에서 유쾌한 농담과 조용한 미소로 학생들을 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린 그 동안 강의 시간에서만 그를 만나왔던 것이다. 그의 본 모습 진솔한 한 사람으로서의 그를 보지 못한것이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 자리를 나오면서 여자 친구 하나와 나 그리고 그는 가는 방향이 같아서 같은 택시를 타게 되었다. 친구가 먼저 내리고 우린 둘만 남게 되었다. 그 사람은 다른 지방에서 출퇴근을 하기때문에 늘 기차를 이용하는 모양있었고 마침 우리집은 역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린 함께 내렸고 어둑해진 밤시간 난 행여나 하는 생각에 그와 같이 다른 행선지로 동행을 권유했고 그는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흥쾌한 승락에 조금은 의외였지만 우린 그날이 운명의 시간이었음을 그도 나도 알 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