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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그린 수채화


BY dlsdus60 2001-06-14

몇 년만에 내려간 고향의 봄은 산과 나무들 그리고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연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귀향을 할 때마다 고향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 아니면 가을이었다.
일년이면 아버님의 기일과 설날 그리고 추석명절 때문에 두세 번 정도를 방문하지만
그때마다 계절은 겨울과 가을이라서 나는 굳이 봄에 고향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어머님의 생신을 고향에서 모시기로 하였고 가족들과 상의할 일도
있어서 봄에 귀향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겨울과 가을에 느꼈던 고향은 늘 삭막하며 쓸쓸해하며 무거운 침묵으로
나를 맞이했지만 봄에 찾은 고향은 새로워 보였다.
하지만 고향은 익숙했던 유년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타향처럼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동네를 들어서자 600여년의 세월을 지켜온 느티나무 한 쌍은 촘촘했던 가지들이
부러지고 병들어 초라한 녹엽들 사이로 비치는 하늘은 옛날보다 넓어 보였고
노파의 허리처럼 굽어진 골목길 양쪽에는 듬성듬성 자라난 유채 꽃들이 파란 잎과
노란 꽃을 뽐내며 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들녘에 가득했던 들꽃들과 나비들은 이름 모를 잡초의 생명력에 밀려나
터전을 빼앗겨 버렸고 텅빈 논을 가득 채웠던 자운영은 흉터처럼 자라 자주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꽃들을 피우고 힘겨운 손짓으로 달아나 버린 벌들을 부르고
있었으며 송홧가루 날리던 소나무들이 잘려나간 야산에는 잔목과 억새풀들이
그 옛날의 숲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 자운영 꽃이 흐드러진 논에서 뒹굴며 놀았었다.
꽃속에 파묻힌 벌들이 하늘을 보며 누워있는 내 주위에 몰려들면 나는 죽은 듯이
숨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벌들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공격하지 않는 습성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누워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면 뭉게구름이 지나가고 새들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나는 하늘에 떠가는 솜같은 구름을 보고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들을 보며 자유를
배웠다.
하지만 부모와 고향을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아직 어린 나이를 원망하며 구름처럼,
새처럼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처지로 어린 마음속에 멍이 들었고 봄은 구름처럼,
새처럼 고향의 산과 들녘을 떠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땅속에 습기가 등을 축축하게 적실 무렵 옷을 털고 일어나면 벌들은
혼비백산하여 꽃들을 떠나고 나를 비틀거리게 만든 몽롱한 현기증이 싫지도 않았다.
내가 누웠다 일어선 자리는 자운영들이 힘을 잃고 쓰러져 나를 도장이라도 찍어
놓은 듯이 또하나의 내가 누워 있었다.

이런 추억과 다르게 고향집 봄풍경도 유년시절과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암소와 송아지가 아버지가 베어다 준 풀을 먹던 자리에는 작은 목련나무 두그루가
싱싱한 잎을 피우고 있었고 까만 돼지가 꿀꿀대던 우리에서는 어미가 되면 돼지처럼
팔려 갈 잡종개 두마리가 기약 없는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돌담을 감싸고 있는 등나무도 낯설고 장독대에서 자리를 잡은 난초와 덩굴장미도
새삼스러웠으며 뽕나무를 심었던 텃밭에는 감나무와 채소들이 새로운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골목길에서 떠들썩하게 뛰놀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목소리도, 읍내 5일장에
끌려가 낯선 사람에게 팔려간 송아지가 그리워 슬프게 울던 암소의 울음소리도
고향집에서는 들리지 않았으며 마당을 들어서면 반갑게 꼬리치던 삽살개 순동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운 것들은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것들이 주인처럼 자리잡아 고향의
봄은 나의 마음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옛날의 고향을 위해 마음속에서 수채화 물감으로 정성을 다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든 것들을 그리고 또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