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아내가 사전 동의 없이 식기세척기를 구입하여 분노한 남편 사건을 보며 이 부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32

지옥과 천국


BY cosmos03 2002-09-19

신새벽에 눈이떠진 우리내외는 부부만이 할수있는 장난질을 한다.
서로의 몸을 보듬고 냄새나는 입으로 뽀뽀도 하고.
순수히 키쑤~가 아닌 뽀뽀말이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대로 서로의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어느순간 남편이 말을한다.
" 어~어...당신...임신했냐? "
" 무슨...웬 임신? 이 나이에? 그리고 지금 기저귀차고 있는거 모르냐?
쌩뚱맞기는... "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니 남편은 내 몸을 일으켜 세우며
가슴께로 손을 대 본다.
손끝을 따라 내 시선도 움직이고...

엊저녁 체한듯하여 드링크제 한병을 마시고는 브래지어를 벗어놓고 잠을 잤었다.
얇은 겉옷위로 얼룩한 자욱과 함께 축축함이 느껴진다.
" 이게...뭐래? "
" 그니까 하는말이지. 당신 애갖엊냐고 말이야 "

옷을 걷고 내 젖가슴을 만져보니 뿌우옇고 노오란 액채가 스며 나온다.
잠시 머~엉해진다.
남편도 나도 서로의 눈만을 바라본채 아무런 말들이 없다.
순간 온갖흉흉한 생각들이 내 뇌속을 혼란시킨다.
혹시...암?

생각이 그쪽으로 미치자 서둘러 난 의학서적을 꺼내어 읽어본다.
유방에 대한 온갖 글귀들을 읽어내려가는데...
심장이 얼어붙는듯 온몸의 털들이 곧추서며 머리속이 하얘진다.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이 성립이되며 그때부터 사시나무 떨리듯 하는 몸을 이끌고.
머리속은 이미 정지해 버렸는데
몸은 생각외로 주방으로 향한다.
쌀을씻어 밥솟에 앉히고 재워놓은 불고기 후라이팬에 굽고
갈치조림을 하려 냉동실에서 갈치를 꺼내놓은게 얼핏 생각이 나서
듬성듬성 무를 썰다가는 끝내 주방 바닥에 쪼그려 앉아
울음보를 떠뜨린다.

어쩌지? 어떻하지?
얼핏얼핏 떠오르는 작은올케언니의 빠진 머리하며
한쪽 가슴이 없어 옷을 입으면 매무새가 한쪽으로 흐트러져있는 모습
항암치료를 받을때의 그 힘들어하던 모습...
그리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박 라일락이라는 사이버상의 선배생각...

주체치 못한 눈물은 어느새 작은 흐느낌으로 어깨까지 들썩여진다.
보는듯 안 보는듯 남편은 아무말 없이 주방쪽을 주시하는듯 하고
어떻게 아침식사를 준비했는지 조차 모르게 밥상을 갖고와서는
말없이 우적우적 밥들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 준비해 "
" 뭘? "
" 병원에 가 봐야지. 내 생각에는 별거 아닐거 같은데... "
" 나 만약 암이면... 죽으면... 이화는 어떻하지? "
" 씰다리 없는 소리 작작좀 하고 빨리 밥먹고 병원에 갈 준비나 해둬 "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한채 반 공기의 밥을 비우고는
작은 올케언니가 진찰받았던 병원을 전화를 통해 알아낸다.
눈물이 쏟아질거 같아 심심해서 유방암검사나 한번 해 보련다고
언니에게는 말을 하고 병원으로 향한다.

허적허적... 발걸음이 허공을 딛는것만 같아
넘어질까 한껏 발가락들에 힘을 준다.

접수를 하고 바짝바짝 말라오는 입안을 혀끝으로 적시우자니
내 이름석자를 호명한다.

문진을 하고 검사를 하려 기계앞에 서니 두려움보다는 조금씩 담담해 지는걸 느낄수 있었다.
올때까지 왔구나~ 이젠...심판만이 남았구나.
위로,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 기계들이 내 가슴들을 사정없이 눌러제낀다.
묘한 포즈들로 사진들을 찍고 났을때
바닥에 보이던 누우런 액채들...

오물을 본듯 못 볼것을 본듯 서둘러 옆에있던 화장지를 몇장 톡톡톡 뽑아
기계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몸에서 나온 유즙들을 닦아내고
축축한 내 가슴도 닦아낸다.

초음파실.
어느새 내 유방들은 사진으로 현상이 되어 벽면에 걸리우고
중성같은 여의사가 초음파실로 흰까운과 함께 들어선다.
차가운 액채가 내 가슴에 뿌리워 지고
이리저리 기계를 문지르며 모니터를 보던 여의사님은 내게 설명을 해준다.

이것은 유두고, 이것은 젖샘이고 이것은 근육이고...
그저 네, 네 만을 하며 고개를 모니터쪽으로 꼬고 있으려니
고만 일어나 따라오란다.

다시 진찰실.
" 저어... 암인가요? "
머뭇머뭇 묻는내게 여의사는 환한 웃음을 띄우더니
그렇다, 아니다의 말대신
" 요즘 무슨약 드신거 있으세요? "
묻는다.
약이라... 내가 먹는약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건강보조식품을 비롯해 관절염약까지 하루에 먹는 약알의 갯수만도 오십여알이 넘는데.

" 관절약도 먹고 보조식품도 먹고... "
" 혹시 위장약 같은거 최근에 안 드셨어요? "
" 위장약요? "
말을 하다보니 문뜩 생각나는게 있다.

관절약을 한 오년정도 먹다보니 위장인지 간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니글거리는게
여~엉 개운치를 안았었다
하여 고정적으로 다니는 의사선생님께 말을 하니 이달부터는 위장약이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그럼...그것이 주범?

그랬었다.
난 암이 아니고 뿐만아니라 유방은 너무도 깨끗한데
문제는 위장약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같은 약을 써도 간혹가다 나 처럼 이런반응을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 약을 먹는동안은 계속해서 유즙이 흐를것이란다.

풀렸던 다리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않았다.
거봐~ 라는 표정으로 남편도 안도하고
나 역시도 잠깐동안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혼자서 멋대로 상상하며 세상끝난듯 그렇게 애면글면 하던 암 사건은
불과 몇 시간만에 위장약 부작용이라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헤벌쭉 웃으며 계산대로 간 나는 다시한번을 놀랄수밖에...
세상에나~ 내젖 보여주고 내야하는돈이 팔만사천이백원.

죽지만 안았으면... 암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병원문을 들어섰던 내가
팔만사천이백원에 병원문을 나설때는 왜 그리 속이 쓰리던지..
이래서 사람들은 뒷간 들어갈때와 나올때가 다르다고 하는가 보다.

돈이라는 물건은 조금 나갔을지언정.
내가 건강하다는게 우선은 고맙고 반가웁다.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에.
아직은 해야할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에.

몇시간사이에 지옥과 천국을 오르내렸던 한나절...
하지만 지금은 천국이다.
천국이 따로있나? 지금 내 마음이 천국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