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노트는 분명 지우개 달린 연필로, 쓰다 틀리면.. 지우고 또 다시.. 쓰면 됐다. 무한한 가능성의 꿈을 안고.. 실패가 부끄럽지 않았던 그 시절.. 젊음을 무기로 순수할 수도 있었고, 교만함에 빠져도...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중년의 노트는 분명 진한 먹물처럼 한번 쓰고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永遠으로 남는다. 중년은 자기 자신의 한 순간의 실수를 잔인하게 허용치 않는 모습으로 책임이라는 녀석이 늘 그림자처럼 뒤따르기에.. 그래서 중년의 이름은 더욱 더 힘들고 아련한가 보다. 때론 냉철한 머리로 뜨거운 가슴을 식혀야 하고, 때론 냉철한 가슴으로 뜨거운 머리를 식혀야 하니까.. 사람들은 나이 사십이 되면 不惑의 나이라고 들 한다.. 내 나이 서른에 나 역시도 마치 어린아이가 구구단 외듯.. 나이 사십은 당연히 불혹의 나이인 줄만 알았다.. 어 불 성 설..이다.. 영리한 인생 선배들은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감정의 족쇄를 채우기 위한 철저한 연막작전을 펼친 것이리라. 지나친 부정은 긍정임을 다시 한번 인정해 주는.. 아주 얕은 속임수에 불과한 말이라며 내 나이 이제 사십되어 조용히 가을 바람처럼 고개를 저어 본다.. 감정도 나이만큼 먹어 가고 이성도 나이만큼 먹어 간다.. 이성의 나이가 많은 사람은 감히 不惑의 나이라 할 수 있겠고, 감성의 나이가 많은 사람은 감히 誘惑의 나이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행동과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감성의 나이는 분명 젊은 시절 못진 않으리라.. 지나온 시절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운 시절들이 너무 많아서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조차 이렇게 수많은 감정들이 가볍게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그 누가 나이 사십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는가.. 젊은 시절엔 그저 무심하게만 바라보았던 자연들이 이렇게 중년의 나이가 되어 아름답게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는데.. 떨어지는 낙엽만 내려보던 난.. 어느덧 빛 바랜 모습부터 바라보는 감정의 여유마저 많아진 나이가 되었건만.. 어찌하여 사람들은 중년의 나이를 그렇게 잔인하게 말라버린 감정의 소유자처럼 유혹이 없는 불혹의 나이라고 감히 단언을 할까.. 아직도 내 안에선 수많은 또 다른 내가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처럼 이렇게 가벼히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는데..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동이 일어도 깊이 있는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그 모습이 바로.. 중년의 모습이...아닐런지.. 움직이는 듯 해도.. 절대 가볍지 않은 자태로.. 물 위에 평온하게 떠있는 백조는 물 밑의 부지런한 몸부림을 숨긴 채 능청스럽게 품위를 뽐내 듯.. 중년의 모습도 마치 그런 모습과.. 같지 않을까... 뜨거운 열정을 두꺼운 솜이불에 감춘 중년의 지혜로운 모습에서 내 모습을 책임지되, 감히 초연한 척, 완벽한 척 불혹이라는 얘기는 하지 말자.. 가끔은.. 가을 햇빛에 이유없이 웃어도 보고.. 가을 바람에 이유없이 울어도 보자... 마치 나이 사십에 모든 감정이 고사된 듯.. 그렇게 불혹의 나이라고 잔인하게 매장 시키지도 말자.. 너무나 많은 세월동안 어깨동무 했던 추억들을 소화시키며 되새김도 해보는.. 그래서 중년의 나이는.. 배부른 감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중년의 나이는.. 서럽도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거라고.. 그렇게 다시.. 중년의 이름을 그려보고 싶은... 바이러스..같은.. 마흔번째..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