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쯤때부터 대학에 갈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다. 미술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같은 반 코흘리개 독자들의 성원에 만화도 그리고, 유치원 졸업장에다 온통 그림을 그려대서 엄마에게 맞으면서도 그리고 (그 유치원 졸업장의 낙서는 내게 획기적인 한 긋이였다. 왜냐하면, 그때 옆모습에는 코를 그려넣어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바닷가로 가족휴가를 가서는 성냥통에다 그리고, 어쨌든 난 맨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하루를 난 상상할수도 없었다. 난 종이와 연필, 그것이 내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겻었다.
정상적이지 않지만, 대학에 입학했을때,
나는 당연히 미대생으로 입학을 했다.
미술 전공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네모를 그리고 싶은데 세모를 그리는 숙제를 해야한는 답답함때문이였을까, 배우고 싶은것이 너무나 많았는데, 어차피 배우는것이 아닌 미술을 배우는척하는 병신성에 진절머리가 나서였을까, 옆에서 그림같은 그림을 그려대는 남자애에 대한 너무나 충격적인 절망의 열등의식때문이였을까, 결국은 불에 태우던가 옷장속에 꽁꽁 숨겨야만 하는 내 그림들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마, 그 이유 다였던것 같다.
맘되로 배우고 싶은것을 다 배우자는 욕심.
대학시절 난 엄청난 욕심을 부리며 폭풍같이 공부를 해버렸고, 졸업을 할때는 그림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엉뚱한 전공을 두개나 받고 이상한곳에 서있었다.
그 이상한 곳에 나는 아직도 있다.
미술전공을 종치면서,
난 미술전람회같은곳에 가지도 못했고, 그림같은 그림이 눈에 띠면 무겁게 눈길을 돌려야했고, 그림에 대한 아는척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가슴이 찌리리 아팠다.
실은, 목이 메이고 망치로 가슴을 얻어맞은것처럼 심하게 아팠다.
세상 잘난척이란 잘난척은 다 하고 사느라고, 내 잘난것을 나도 차마 감당못하게 기고만장한 하룻강아지 나도 그림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쪽도 못쓰는 박살난 패배자였다.
올해.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저 산 넘으면 이제 그만 살아도 된다고 으르릉거리던 산을 그야말로 억지로 간당 간당하게 넘었다.
예정되로라면 내 인생은 지금 텅 빈 고속도로 달리듯이 초고속 스피드를 내야하는데, 왜 그런지 나는 지금 멈추어 서있다.
옆에서 누가 밀어도, 한번 째려보고 꿈쩍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창고 깊은 속.
십년이 넘게 말라버린 물감과 붓. 눈뜨고 보기에 창피하다고 여겨졌던, 그러나 이제보니 신통한 나의 작품들.
그림을 그리든, 낙서를 하든, 혼자 쇼를 하든,
단지 나에게 붓을 잡을수 있는 손가락이 있고,
아직도 비어있는 캔바스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옛날 단지 종이와 연필이 있다는것이 행복의 조건 전부가 되던 시절처럼,
감사할수 없었던 나의 젊은 날이
우습다.
우습다.
(h 님. 아직도 저는 님의 닮은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