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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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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85


BY 녹차향기 2001-06-08

와아!!!
드디어 아.컴에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들어오려고 애썼는지 아세요?
손가락이 근질근질, 궁금해서 좀이 쑤시고,
참다가 참다가 나중엔 보고싶어 눈이 짓물렀잖아요.
ㅋㅋㅋㅋ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으시다고요?

6월 2일 토욜부터 6월 5일 화욜까지 자그마치 3박 4일간이나
고향 강릉을 다녀올 일이 있었거든요.

아버지와 함께 얼굴도 뵙지 못했던 친할아버지,
다정다감 하셨던 친할머니 산소도 찾아가서 절도 올렸지요.
그리고는,
치매에 걸려 친정엄마를 조카딸이라고 알고 계신 외할머니를
찾아뵙기도 했어요.
"어떻게 이렇게들 많이 모였어? 정말 좋아, 밥이라두 얼른
지어 대접을 해야하는데, 내가 몸이 아파..."

외할머니는 침상에 누워 꼼짝도 못하실 뿐 아니라,
여기저기 욕창이 생기셔서 보라색과 붉은 색의 반점이 많이
있으신데도 찾아오신 손님들을 보자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하시며 하신 말씀을 자꾸 되풀이 하셨지요.
종잇장처럼 하얀 얼굴과 뼈만 앙상한 손과 얼굴,
한 쪽 다리는 두세배 부풀어 오른 듯 퉁퉁 부어있고,
지저귀를 찬 속을 혹시라도 우리가 볼까봐 자꾸 이불을 내리라고만
하셨지요.
침대에서 행여 떨어질세라 침대 난간을 꽉 잡고 계신 손을 가만히
쓰다듬어 드리고, 얼굴도 문질러 드렸어요.

"할머니, 나 은미예요... 기억 못 하셔도 좋아요.
얼른 나으셔야 해요. 잘 드시고, 기력 놓지 마세요."
할머니 눈동자가 어찌나 맑고 깨끗하던지,
조그맣게 겨우겨우 띄엄띄엄 하시는 말씀을 뒤로하고
"할머니, 또 올게요. 잠깐 나가서 우리 점심 먹구 나중에 또 올게요."
그렇게 거짓말로 인사를 하고 나와서 아름드리 장미가 활짝 피어있는
요양소의 한 정원에서 한참을 서서 울었어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요.
맑은 강릉 하늘이 너무 예쁘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운데 저렇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 가여워서요.
한 달이면 몇 번씩 강릉을 오가는 친정엄마가 너무 불쌍해서요.

할머니를 그렇게 놔두고 우리는 고모댁에 가서 맛난 점심을 대접 받았지요.
오후엔 바닷가에 나가 조개도 잡고, 저녁 늦게서야 설악에 있는
콘도로 들어갔구요.
다음날(일욜), 친정부모님과 동생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저는 강릉에 있는 효산콘도로 내려와 일행을 맞이할 준비를 했지요.
월욜과 화욜은 현장학습의 날이라고 해서, 학교가 마침 쉬었기
때문에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아줌마들과 또래 아이들에게 현장학습을
계획했었거든요.

제 1일차
오후느즈막히 강릉에 도착한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와아!! 바다다!!"
기쁨에 겨워 옷 입은 채로 바닷물 속에 첨벙첨벙 뛰어들고,
모래성 쌓기 시합을 했지요.
엄마들 5명, 아이들 11명.
설레는 마음에 아이들과 엄마들은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였고
멀리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이 아름답게 반짝였어요.
그렇게 16명이 2박 3일간 아름다운 여행을 기대하며 잠을 설쳤답니다.

제 2일차
일출을 보기로 마음 먹고 새벽부터 설쳐댔지만 자욱한 안개와 몰려오는 피곤때문에 일출은 보지 못하고,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삼척에 있는 환선굴을 향했어요.
산 하나가 속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 신선이 되돌아 간 곳,
선녀가 왔다가 사라졌다는 곳의 전설에 걸맞게 그 안은 이제껏
우리가 보았던 동굴과는 완전히 규모가 달랐어요.
돌아온 후 다들 그 동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정도!

산 밑에서 산채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오후엔 옥계 해수욕장을
향했지요.
바닷속에서 손으로 모래를 조금만 뒤집어도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조개를 잡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들은 까맣게 그을리고
다음날 아침 식탁엔 그 조개탕이 올랐지요.
그렇게 바쁘게 하루해가 저물었어요.
다들 자라고 소리지르지 않아도 곯아떨어져서 일찌감치 잠이 들었지요.


제 3일차
가장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 하루,
참소리박물관에서 에디슨의 수많은 발명품들과 축음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고,(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박물관)
정동진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몇년전 해안을 침투한 간첩을 잡느랴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잠수함도 직접 관람하고,
초당마을에 가서 허난설현의 생가를 구경했지요.
초당선생은 허난설현, 허균의 아버님이라네요.
순두부를 안 먹을 수 없었겠지요?

오후엔, 선교장을 들러 오죽헌을 둘러보았답니다.
이렇게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현지에 계신 저희 친척 할아버지께서 실비로 차를 움직여 주셨기 때문이지요.
할아버지, 감사해요.
어림도 없는 예산을 잡아놓고 그 예산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아이들과 콘도안에선 주로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밖에서도 3천원에서 4천원 선의 저렴한 식사를 먹고 다닐 수 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중 누구 하나도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쓰지 않아서
정말 고마웠어요.
아이들 입이라고 몇 인분씩 덜 주문을 해도 싫어하지 않는 음식점
사장님, 게다가 무료로 커피까지 후식으로 제공해주신 분들
아마 큰 복 받으실 겁니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다들 곯아떨어져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침까지 줄줄 흘리며 자더군요.
초등학생들에겐 너무나 무리한 강행군이었는데, 엄마들의 지시에
아주 협조적이었거든요.
그렇게 베낭을 둘러메고 라면으로 일관된 여행이었는데도 마냥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열정이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아이들이 햇살에 그을려 구릿빛으로 검게 변했네요.
푄현상, 경동성지형, 높새바람, 카르스트지형, 오죽헌, 이이와 신사임당, 오천원권에 그려진 이이의 벼루, 종유석과 석순....
교과서에서 나온 것들을 실제로 만져보고 체험하고 느꼈겠지요?

직장때문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여행을 엄두도 못내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이런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신다면 한번쯤은 꼬옥 권해드리고
싶네요.
아이들이 더 커서 엄마와 여행가는 것을 꺼리기 전까지는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아 부모를 멀리하기 전에요.
김치를 담궈서 콘도까지 가져다 주신 고모부와 고모, 감사해요.
아이들때문에 더욱이 운전은 조심조심 해주신 할아버지 감사해요.
여행가는 것에 적극 협조해 준 남푠께도 감사,
다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와서 감사,
이렇게 아름다운 산하가 있음에 감사,
내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적은 돈이 있었음에 감사,
씩씩한 아이들과 내 말을 믿고 따라준 이웃 아줌마들에 감사.

다음엔
영덕으로 가서 박라일락님을 뵙고, 청송으로 가서
닭홋스를 만나고, 지리산에 가서 베오울프를 만나고,
동해바다님을 만나고, 멀리 물건너 제주로 가서 하우스54님을
만나는 계획도 세워봐야겠네요.
정말요?

밤이 많이 깊었네요.
여러분들께 좋은 일만 그득그득 넘치시길 바라며,
세상의 고단함을 단잠에 녹여내시는 밤이 되시길 바래요.
글구 너무 날씬하고 예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자연그대로의,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대로의 건강함 아름다움을
늘 간직하세요.
좋은 꿈 꾸시고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