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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19

꿈은 허상으로 끝나고.......


BY 물안개 2001-06-07


서울에서의 공장 생활은 개미가 채바퀴를 돌듯 자고
새면 일하고 또일하고 내가 꿈구었던 야간학교는 상상
할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하루에 2교대로 일했던 기억밖에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군요.

원래가 내성적이던 저는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그저
일요일이면 책이나 빌려보 는게 고작 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못다니 드라도 양장 기술은 배워야지.....

그 욕심은 버리지 못하고 2년동안 고향에도 가지 않고 열심히 저축을
해서 마침내 19 살 되든해 음력설에 그립고 그립던 고향에 가기 위해
서울 공장 생활은 잠시막을 내렸습니다.

그리운 부모님.동생들. 친구들 저는 하나하나 선물을
샀는데 부모님은 속옷 동생들은 노트를 친구들에겐
껌을 한통씩 ! 가슴은 고향에 간다는 설레임으로
두근두근 .......

저는 2년 동안의 서울 생활 덕분에 말씨는 완전한 서울
말씨를 ?㎞?얼굴은 섬처녀 티를 벗고 완전한 도시
아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엔 반대로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여수에
도착 여객선을 탓는데 설밑이라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동생들에게 줄선물 보따리로 어떤 아주머니의
정갱이를 부딪 쳤는데 그 아주머니는 오마 오마 석몽장
갱이여~~~ !

오랬만에 들어보는 정통 전라도 사투리에 순간 적으로
웃음이 터져나와 아주머니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오마 이 가이내가 못쓰것네 잉 미안허다 고는 못허고
웃는다냐?

그때야 비로소 극구 사죄를 했답니다.

2시간 만에 배는 나로도에 도착을 했고 드디어 보고도
못가는 쑥섬 앞에서 나룻배를 타고 쑥섬 우리집 도착했죠.

동내는 아직도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고 우리집은 여전히 가
난한 상태로 2년 전모습 그대로 그자리에 있었지요.

그당시 서울에 갔다온 사람은 동내를 다뒤져도 ?p안
되었기에 저처럼 어린 나이에 서울 갔다온 사람은
저혼자 였습니다.

방안에서 엄마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
워 나가보니 많은 동내 아이들이 나를 보려고 와있어서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아유~~~ 이렇게 많이들 왔니?

하고 서울 말이 튀어 나왔는데 아이들은 그말이 신기해
서 니? 니?
저만 보면 서울말 흉내를 내서 한동안 곤욕을 치렀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