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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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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산다는것은...


BY 핑크벨 2002-09-06


몇해전 겨울.

나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에 있다는 한 요양원에 다녀 온

적이 있다.

평생을 교직에 몸 담고 사셨던 나의 어머니는 어찌된 일인지 정년퇴직

후 파킨스란 불치명을 훈장처럼 얻게 되셨다.

요양원은 어머니 친구 소개로 가게 된 곳인데 초겨울이라 그런지

주변 정경이 몹시도 허허롭고 황량스럽게 느껴졌다.

입소절차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짐정리를 끝내고 창밖을 보고 있는데

그 순간 나의 시야에는 부부인 듯한 한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여자는 고개를 푹 떨구고 계속 우는듯 싶었고 남자는 여자보고 어서

들어가라는 손 시늉을 해 보였다.

그 애틋한 광경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왔다.

저녁시간이 되자 강당에서 간단한 입소식이 있었는데 자기소개 시간

에 발표되는 환자 한사람,한사람의 병력이 어찌나 화려하고 처참한지

오히려 멀쩡한 몸으로 그것도 보호자란 이름으로 앉아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 였다.

요양원 생활은 아침6시 기상을 시작으로 레크레이션 물리치료등등

규칙적인 커리큘럼에 짜여 진행 되었는데 처음 서로를 어색해 하던

회원들도 이젠 제법 친분이 쌓여 마치 한 가족처럼 되어갔다.

나도 많은 회원들과 친숙해 졌는데 그 중 특히 강미숙(가명) 이란

여자와 가깝게 되었다.

그녀는 입소한 첫날 ,남편과의 이별로 나를 슬프게 했던 바로 그녀였다.

모든 인관관계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상이라든가 속마음

이야기를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틀어 놓질 못할 때가 많다

자존심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지인들일 수록 자신의 치부를 꼭 꼭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와 나는 적어도 우리가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만큼은

불문화되어 영원히 남을 수 있다는 안심때문에 서로의 고민이라든가

마음속 이야기들을 흉금없이 터 놓고 지매며 친하게 지냈다.

사십대 중반인 그녀는 자궁암말기 판정을 받고 오게 되었는데 슬하에

2남 1녀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마남지 않은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이곳

요양원을 가족과의 이별연습을 위해 찾았다는 고백을 내개 했다.

사람이 자신의 남겨진 생명의 시간을 예감한다는것...그 시간들이

불가항력적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때...그 고통은 이루 표현 할

수가 없다.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들은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면....

언젠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 남편이 면회왔다는 호출을 받고

어린애 처럼 달려가 남편품에 안기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그 날이 아마 그녀의 생일이었던걸로 기억되는데 ...남편이

아이들의 카드와 케익을 들고 아내의 생일 을 축하해 주러 왔던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카드를 읽으며 밤새 울었다고 했다.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찢어 지도록 아팠다. 그리고 그날밤 밤새 신자도

아닌 나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또 했다.

'그녀를 부디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 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사고...'

한달이 지나고, 드디어 우리는 그곳 요양원을 퇴소하게 되었다.

퇴소식이 있던날,회원들의 안녕을 비는 자원봉사자의 송사와 떠나는

회원의 답사가 있었는데 낭송되는 동안 강당은 이별의 슬픔으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회원들간에는 서로 부둥켜 않고 우는 이도

있었다.그들은 어쩌면 ...지금 이순간이 생애 마지막이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마다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요양원에서 돌아온 나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 밀린 일을 하느라

무척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다.

강언숙씨와도 간간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요양원엘 다녀 온

이후 건강이 말도 못하게 좋아 졌다며 조만간 분당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겠노라고 했다.

그게...그녀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이른 아침 커텐으로 들어 온 햇살이 유난히 따가워 눈을 떴는데

불길한 전화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대는 것이었다.

강미숙씨의 어머니였다. 나는 순간 혹시나 하여" 아줌마 잘계시죠?

건강은 많이 나아졌나요?" 마치 재촉이나 하 듯 물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어 온 대답은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 우리 미숙이...이제 하늘 나라로 갔어요...아무 고통도 없는...'

강미숙씨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하고 흐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둔탁한 강한 무엇인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그것은 전율보다도 더 한 느낌이었다. 아주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정말 표현 할 수없을 만큼의 뜨거운 슬픔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갔다...

그 후 몇달이 지나고 나는 그때 어머니와 함께 했던 8기 회원들

대부분도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중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애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아주

고통스럽게 임종을 맞이 하신분도 계셨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 한

분도 계셨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접하게 되면

인생의 그 덫없음에 잠깐이나마 생의 의욕을 잃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8년이 다 된 지금... 지금의 나의 어머니는 병세가 조금 더 진행

되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없이 잘 살고 계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강원도 요양소에서 보낸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을 내개 많은

의미를 남겨 주었다.

무릇...사람이 태어 날 때부터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왜 사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지금도 나는 가까운 내 주위에서,물질을 풍족히 갖고 있지 못한

빈한함에, 무슨일이든 일등이 되어 주질 못하는 자녀에 대한 불평스러

움에 사는 내내 한탄하는 지인들을 적잖게 보게 된다.

그럴때마다...나는 ...이유있는 탄식에 스스로 허탈해 질때가 많다.

지금의 내 글이 ,어쩌면...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접하고 나면

으례히 갖게되는...감상병쯤으로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요양원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 지나온 내 인생을

돌이켜보게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에 대한 미래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 주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 삶이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 삶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민하는것...

그것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