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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을 받는 남성의 사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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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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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45


BY 후리지아 2002-09-05

사람들은 지금을 가을이라고 합니다.
몇일전 지방 소도시를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곳으로 가는 시외버스 차창으로 비쳐지는 풍경은 정말 가을 이였습니다.
백일홍이 머리에 꽃을 단채로 잎은 누렇게 생을 마감하고 있었고, 넓고 초록짙은 잎사귀
사이로 칸나가 타오르고, 맨드라미가 세상의 고뇌를 다 떠 안은채로 꼬이고 비틀어진
머리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핀 코스모스가 가을을 맘껏 즐기고 고추 잠자리
들이 하늘을 비행하며 놀았습니다. 그렇구나, 가을이구나...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찾아 간 곳에서 희망을 안고 돌아 오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생이 어디까지 고통을 당해야만 끝이 나는 것인지 불혹이 되었지만 아직도
전 모르겠습니다. 살면 살수록 쉬워져야 하는데 살면 살수록 힘든 것이 세상의 이치인 듯
싶어 가슴만 먹먹해 지는 날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날마다 고민을 안고 사는 제가 싫어 졌습니다. 저도, 고민 없이 아니! 고민이 있다 하더라도
웃고 싶습니다. 날마다 우울한 생각을 하다보면 그 우울이 옆사람에게도 전염이 되는 듯
하여 주위가 온통 우울 뿐이였으니까요.

머리속이 엉킨 실타래 처럼 복잡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해야 할 일들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이
이즈음 처럼 속상한 적이 없습니다. 무형의 바람처럼 멀리 사라져 다시는 돌아 오지 않고
싶은 심정이면서도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저 가슴만 먹먹합니다.
하긴...지금까지도 잘 하고 살았으니 이런 일 쯤이야 하고 넘기면 간단한 것을, 전 그것을
하지 못해 몸살을 앓고,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쑤시는 것일 겁니다.
변변치 못해서 얻어지는 병이니 누구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쉬어야 겠습니다. 아주 잠시만 쉬고 싶습니다. 정말 잠시만 쉬고 싶습니다.
생각이 깊어지자 어쩌면 그만 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들게 되었지요.
이래서는 안되는데 마음에 병이 들면 몸에 찾아들고, 그러다 정말 그만 사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 미장원엘 갔습니다.

뿌옇게 흐려진 하늘을 올려다 보니 태양이 떠 있습니다.
낮달처럼 서글프게 빛을 잃고 황망한 얼굴로 대지를 내려다 보는 태양이 왜 그리도 슬퍼
보이던지 한참을 가슴이 아팠습니다. 태양이 빛을 잃으면 태양이라 할 수 없을 진데 그래도
낮에 떠 있는 것을 보니 분명 태양이 맞습니다.
우리도 가끔은 빛을 잃은 태양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의 도리도, 절제도, 모두 잊어 버리고 그냥 사는 것은 아닐까 해서지요.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이 사람의 도리를 하며 사는 것 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으로 사는 것만이 모두 사람의 도리를 하며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 보니 사람의 도리를 하지 못하며 살았던 세월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부터는 마음이 점점 무거워 지고 있습니다. 믿어준 사람을 배신도 했고,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겸손해 질 자리에서 교만하게 굴었으며 야무지지도 못했고, 친구의
아픔을 보면서 내가 더 아프다고 악을 써댔으니 어찌 사람의 도리를 다 했다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쓰린 가슴을 쓸며 몇날을 견디다 지금에서야 추스리고 일어나야
하는구나 를 알았습니다. 지금 까지도 살았으니 앞으로도 제가 살아 숨쉬는 동안도 살아 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추스리고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인생을 사는 것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 처럼 자연 적인 것 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 것입니다. 태양이 떠 오르기전 미명의 하늘을 올려다 보면 하늘은 결혼식 준비를
모두 마치고 기다리는 신부처럼 아름답게 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기다림이 필요
할텐데, 우린 그 기다림을 잘 견디지 못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다림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며 언어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제가 아파하고 섧고, 괴로운 것이 그 기다림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이젠, 좀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림을 만나야 겠습니다.
인생이란 같은 길만을 갈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매번 자신이 가는 길은 평탄하고 순조롭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른 이들이 가는 길이 더 거칠고 자갈길 임에도 우린 자신이 걷는 길
이 더 힘들고 고단 하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하며 자신의 불평을 합리화 시키는 일을 하곤
하지요. 이제... 그러지 말아야 겠습니다. 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비록 험하고 고단하다 할
지라도 묵묵히 걸어가야 겠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주어진 특별한 은총이니 산다는 것
만으로도 전 감사해야 겠습니다.

부질없이 고민하던 마음을 털어 버리고 더 많은 것을 올려다 볼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떠야
겠습니다. 크게 뜬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더 높이 올려다 보아야 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이니, 마음으로 많이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부터는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어 보아야 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의 도리
를 남은 인생 동안이라도 해 보아야 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하루씩 살아야 하는 날들이 줄어 들 듯 버리며 사는 것은 아닐 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