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하루만의 외출(?) 이였것만....
그것도 피곤했든지.....
난 줄곧 잠에 취해 있었다.
두 세번 깨다가 일어나고를 반복 하다보니,
어느새 영등포 역에 도착했다.
동이 다 트진 않은 이른 새벽...
일출은 못 보고 온 아쉬움도 사실
있었지만, 숙박시설에 여자 혼자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겐 아직은 쉽지만은 않았다.
24시간 전에 올라왔던 그 계단을
난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행렬 중에
한 택시를 탔다.
무작정 방배동으로 가자고 했다.
그 기사 역시 말을 붙여 온다.
"이 새벽에 어딜 가세요?"
"가는게 아니라, 돌아 오는 길인데요?"
"아....그래요?
어딜 다녀 오셨는데요?"
"정동진요....."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듯 난 말을 받아줬다.
"혼자요?"
"네.....남편이 허락해서 다녀왔죠뭐.."
이 능청스러움이란~ ^^ 극치를 달하고 있었다.
"좋은 분이네요. 아내의 여행을 허락하시니.."
"겨울 바다라 참 좋더군요.."
"네......저두 예전에 가봤는데오.
꽤 운치 있죠...그 곳이..
늦가을 타셨나보네...여행 다녀 오시고.."
"네.....낙엽도 밟고 그랬죠."
"후후....사실 제가 아는 어느 슈퍼 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가을이 되니, 너무너무 낙엽이 밟고
싶었나봐요. 그런데, 장사 때문에 나가지는 못하고
할 수 없이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 에게
학교에서 낙엽 좀 주워오라고 했대요..그래서....
가게 카운터 책상 밑에다 깔아놓고 밟고 있더라구요
얼마나 낙엽이 밟고 싶었으면......."
"마저요.....공감이 가네요.."
아줌마.....
너무 현실적이고,
감정 조차 없는 줄 아는데.....
알고 보면 더 마음이 여리고,
지나가는 계절 붙잡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어느새
동네 골목에 들어섰다.
난, 택시에 내려 집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훗~
가관이 아니였다.
신발부터 흩어져 있고,
욕실 앞엔 걸레는 내가 짜둔 그대로 말라 있었다.
싱크대엔 빈 그릇 투성이고,
먹다 남은 밥이 빠짝 굳어 있었다.
우리방 문을 열어보았다.
두 아이가 엉켜 자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안도의 한 숨 같은걸 쉬는듯 했다.
"집 엉망이지?"
"나참......평소에 혼자 깔끔한척은 다 하더만
나 하루 없는 사이에.....이게 뭐야?
이게 돼지우리지 사람집인가?"
남편은 웃고 만다......
코트만 벗어 놓고, 팔을 걷어 붙인다.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렸다.
4살박이 아들.....눈을 떴다.
근데, 엄마가 어딜 갔는지도 모른지
"배고파....우유...우유.."
소리만 반복한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이런~
반찬통을 엎질렀는지,
김치국물이 튕겨 있었고,
물병에 물 한방울도 없고, 역시 우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애들 제대로 밥이나 먹였는지원.....
잠시 후, 딸내미도 일어났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뭘 아는듯......
"어....그냥 여행...."
"내가 기다렸는데....."
"그랬구나......미안해.."
그리고, 어제 아빠가 밥 챙겨 주더냐고 물어 보았더니,
한번 밖에 안 먹었단다....
그리고, 아빠 내내 잠만 잤단다...
에궁 -.-
나 없는 사이에 애들만 고생 했구나....
난 보일러를 높이고,
애들 목욕을 시켰다.
고새 깨재재 해져서, 한마디로 거지꼴이였다.
작은 넘은 감기 까지 걸려 있었다.
애들한테 미안했다.
오후에 집 근처 KFC에 데려갔다.
그리고, 먹고 싶은걸 사줬다.
하루 안 돌봤다구...마른듯 했다.
사온 선물을 주었더니,
모래시계의 신기함에 아이들 시선을 집중했다.
다음엔....꼭 데려가마....
남편......3시에 오더니,
쑥스러운지 웃고 만다.
보고 싶었단다.
[고새??]
없으니 많이 서운했단다.
[믿어야 하나?]
여하튼......말없이 떠나버린 여행길이였지만,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막혀 있던것이
뻥하고 뚫린 듯한 느낌.....
시어머님은 계모임 단풍구경에서 아직
안 돌아오셨다.
며느리의 외도(?)를 모를것이다.
담부터는 정 가고 싶음 메모를 해두란다.
보내 주겠노라구.....
치.......쌈해서 홧김에 간 탓도 있는데......
근데, 나중에 남편이 하는말....
"나.....너 정동진 간 거
너 전화 오기전에 알았어..."
"어떻게?"
웃고 만다.
아~~~~ 아줌마닷컴을 열어 본 눈치였다.
그러니, 걱정을 덜했다나.....^^
"넌......그 좋은 곳에 갔으면서도
PC방엔 왜 가냐?"
"그냥......"
난, 오늘 좀 편히 잠 들수 있을 것 같다.
살아 온 날 보다
살아 갈 날이 더 많은 우리들인데,
이젠 정말 부딪히지 말고,
비켜 나가는 방법도 조금씩 터득해야 할것 같다.
근데, 난 이상하게 일년에 한번씩 이렇게
폭발한다.....왜일까?
병일까?
아무래도, 일년에 한번 만이라도 혼자만의 여행길을
허락 받아 놔야 겠다.
딱 25시간만의 외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삶이란.......
기차 여행에서 본 굴다리와 같았다.
어둠속에서 헤매이다 다시 밝은 세상이 오고,
또 그러다 또다른 어둠이 찾아 오는
반복되는 생활......
익숙해져야 한다.
어쩜, 남들보다 조금은 빨리 시작한 인생길이였다면,
좋은 결과 역시 빨리 오지 않을까?
순간 힘들다고, 세상 다 산듯 하지마라는 말
난 남편의 잔소리로만 들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순간일 뿐이다.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