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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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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BY allbaro 2001-06-05

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갑자기 리드보컬이 두손을 좌우로 벌리며 머리위로 들어 올려 크게
동그란 형태로 만들며 한번 박수를 쳤다. 그 순간 객석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무엇인가가 갑자기 부서져 버리고 청중들은 모두 일어섰
다. 함께 외치고 발을 구르고, 크게 열린 동공엔 네온이 흘러 들어
갔다. 형광 막대를 든 손들이 일제히 작은 원을 그리듯 리듬을 타
고 흔들리고 있었다. 부채살 같이 퍼져가는 푸른 조명이 객석을 예
리하게 꿰뚫자, 밴드의 뒤쪽에서 눈을 뜨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렬
한 헤드라이트의 조명이 붉게 점멸을 하였다.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밴드들의 모습이 검게 사라졌다 붉게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드럼의
베이스가 의자까지 흔드는 진동을 타고 쿵쿵! 거리며, 가슴을 뒤
흔들었다. 섹스폰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관중들의 광기에 불을 질렀
다. 기타는 오렌지색 섬광을 뿜을 듯이 난사하는 발칸 기관총을 닮
은 채, 현란한 음을 쏟아 내고 있었고 퍼크션의 손길은 막 신이 오
르는 무당의 버선발이 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난 이토록 네온에 목말라 있었다. 일상에서,
그리고 우리의 낮은 땅에서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조명의 하모니
가 심장을 투과하여 지나가길 고대하고 있었고, 포그머신이 뿜어내
는 안개와 살아 숨쉬는 조명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꿈속의 장면
에 흔들거리는 몸을 맡기고 싶었던 거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드럼의 무차별 난타가 두두두두두두... 훑고 지나가자 보컬은 우상
이 되었고 밴드는 청중들의 광기를 사로 잡고 있었다. 이 순간 그
들은 파워 넘치는 거대 앰프의 도움으로 신이 되고 있었다. 웅웅
거리는 리드 기타는 기타줄을 마구 물어 뜯고 있었고, 나역시 권태
로운 일상과 무엇인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듯한 것들을 물어 뜯어
주고 싶었다. 후욱~ 하고 열기로 인하여 방금 발산된 땀의 향기가
야생의 무리로 싱싱함을 더해가는 객석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늘
높이 팔을 내지르는 환호는 온통 소리로 채워진 공간을 뒤 흔들고
있었고, 그 속에는 인광 번뜩이는 젊음이 있었다...

네? 6시30분까지요?... 전화를 끊고 바라본 시계는 이미 5시 근방
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가지말까? 라고 마음을 고쳐 먹으려 멈
칫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몇 일전에 전화가 와서 이번 공연
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공연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것이라고
전화상으로 짧게 설명 하였을 때, 난무하고 짧은 주기의 가요들에
게 조금 식상해 있던 나는, 그렇다면... 이라고 솔깃한 호기심을
불어 넣었다. 하지만 나중에 안일이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등
기 우편의 탓이었고, 그리도 한번더 확인한 꼼꼼함이었다. 전철에
서 뛰듯이 내리며 흘깃거린 시간은 6시 40분. 세종문화회관의 로비
에선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는 이런 상황에 피곤해 지려 하고 있었
다. 우연히 이번 공연의 초대를 받은 것처럼, 초대한 당사자들을
만났것도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었고, 어쨋든 나는 2층의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대는 어두웠고, 대형 스크린에는 혼잣말처럼 그들
의 프로필이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무대 앞쪽의 오케스트라 리프트를 타고 마침내 그들이 왔다. 어색
하게 너울거리는 퍼포먼스로 시작한 그들이 악기들의 곁으로 자리
를 잡자, 첫 곡은 Super natural 의 분위기로 갑자기 시작 되었다.
서서히 청중들의 손에서 형광막대가 춤을 추기 시작하였고, 삭스의
솔로 연주가 진행되는 부분에서 숨을 죽이게 된 것은, 워낙 삭스
연주를 좋아하는 탓이었고, 내가 그렇게 목말라 하던 네온의 틈에
서 방금 눈앞에서 생산된 삭스의 날카로운 음계가 귀를 뚫고 들어
온 때문이었다. 순간 무대 뒤편의 스크린은 객석으로부터 무대를
비추었고 신비스러운 거울 속의 거울이 되어 푸른 점으로 사라졌
다. 아쉬운 것은 폐를 채울 담배 연기와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
줄 신경 안정용 알코올 이었다.

어떤이는 꿈을 나누어 주며 살고... 귀에 익숙한 곡이 무대를 가르
자 콘써트 홀은 거대한 합창단이 되어 리듬을 따라 가고 있었다. 8
대의 포그머신에서 가로수, 또는 폭포 같은 안개가 솟구쳐 오르고
여러분도 꿈을 이루고 사세요오...라고 보컬의 여유로우면서도 약
간 숨이 찬듯한 묘한 음성은 환호를 뿜어 내게 만들었다... 빨강,
파랑, 분홍, 초록의 빛이 관중석에서 일렁일 때, 너도 그렇고, 나
도 이기적이야, 우린 모두 이기적이야... 그렇게 보컬의 훈계가 반
복되고 있었다... 잠시 음악이 멈추고 연주자에 대한 소개가 있었
다. 달파란... 김종진, 전태관 팀의 오랜 친구로 8년만에 함께 연
주한다는 그들대로 감회 어린 설명이 있었고, 무대 뒤편의 조명이
밝아지며 현악 오케스트라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라며 기타 연주가 길게 늘어지고, 이어서
현악 연주가 뒤를 이어갈 때, 무대는 온통 비누방울이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로 둥둥 떠다니며, 그렇게 세상속으로, 사람들의 속으로,
네온과 형광물질의 속으로 잠시 또 다른 시간으로 일탈이 있었다.
기성으로 답하는 관중석에서, 귀보다 가슴을 울리는 거대 출력의
앰프와 고양이의 눈동자 같은 스피커가 흥분한 청중들을 노려 보며
그곳을 시시각각 창조 하고 있었다.

퍼크션 연주자의 3.3.7 박수를 골격으로 한 멋진 연주가 끝나고 잠
시 숨을 돌리는 사이, 그들이 언제인가 밤새도록 Sound Setting을
마치고 나온 무대밖에, 10여명의 팬들이 침낭을 깔고 새우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젊고 단명하는 가수가 양산 되는 이때에 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연주생활을 하고 싶다고 자신들의 겸손한(?)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굵고 길게도 하고 싶다는 조크같은 진
담을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
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모두가 나이를 부담으로 갖는 이때에 자
신의 시대로부터 자신의 향기를 가진 분명한 얼굴의 존재로 나선다
는 것은 이 행성의 다양화와 자기 주장의 분명한 이정표가 될 것이
다. 라는 조금 이상한 취급을 받는 나의 평소 주장을 그들이 대신
말해 주는 듯하였다.

울림이 많은 shout와 때로 Soul을 듣는 듯한 익숙한 음성이 검은
무대를 깔끔한 수트로 걸어 나왔고, 스포트 라이트 아래에 멈추어
선 그는 박효신 이었다. 김종진, 박효신, 그리고 탁월한 삭스 주자
까지 셋이 나란히 서서 절묘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우러진
사운드를 만들어 낼 때, 라디오에서 재치 있는 말솜씨로만 다가왔
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절정의 순간이
었다. 그들의 탄탄한 실력으로 인하여 우리는 무력하게 몰입하고
있었고, 따라가고 있었고, 흥분에 들뜨고 있었다. 바나나 쉐이크가
멋지게 끝나고, 열일곱 스물넷 이제는 행복만이... 라고 음이 높아
질 때 모든 청중은 일어섰고 발을 굴렀다. 다 같이 열일곱 스물넷
을 소리치고 있었고, 그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진작가 김중만의 퍼포먼스, 그러니까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
어 real time으로 대형 스크린에 출력(?) 하려던 순서는 quality에
이의를 제기한 까다로운 프로 김중만의 반대로 무산 되었고, 우리
는 페르시아의 왕자로 위로를 받았다. 이어진 무대는 드럼과 사물
놀이, 패닉 김진표의 say o, say o.o.o., say 울랄라... 로 절정을
행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김종진과 리드기타, Next의 전 멤버인 김
세황 이렇게 삼인의 흡사 대결을 벌이는 듯한 기타 연주는 차라리
퍼포먼스에 가까운 절묘한, 멈추어 정지 동작으로 오래동안 간직하
고 싶은 시간이었다. 물어 뜯고 등 뒤로 연주하고, 눕고 업드리고,
쪼그려 앉아 가야금을 뜯듯이 연주하는 모습은 한판의 놀이를 보는
것 같이 넘쳐나는 즐거움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늠하기 어려운
솜씨를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여유로움으로 풀어 내고 있었다. 미
인이 연주 되기 시작했을 때 역시 신중현은 그 바닥의 큰별이 되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끈적한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스크럼을 짜고 인사를 마친 그들은 그렇게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지
고 우리는 목을 높여 앙코오르를 외쳤다. 나는 서식지로의 귀가를
준비하며 예전 연강홀에서 다리가 부러진 채로 열창하던 김장훈의
공연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그리운 지난 한시절의
열광을 그리며 고정된 상태로 잠시 멈추어 있었다. 그때 객석에서
무대로 뛰어 오르는 빨간 머리가 나타났고, 그의 검은 치마로 우리
는 김장훈을 알아 보았다. 앙코오르 무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들이 남긴 앙금을 씻어 내는 한바탕 씻김 굿이었다. 모든 에너지는
집중되고 무대의 가운데서 폭발 하였고, 주변의 기성들은 한덩이가
되어 귓가에서 람보르기니 카운타크의 배기음으로 붕붕~ 거렸다.
손바닥은 이미 아까부터 얼얼하게 아려오고 있었다. 몸은 뜨거웠
고, 그들은 김장훈과 함께 짓궂은 캉캉을 추고 있었다. 나는 이들
의 열정과 광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멋진 것임을 알고 있었고 흔들
리는 리듬에 맡겨버린 몸은 아까부터 목언저리에서 출발한 굵은 소
름이 쭉쭉 내닫고 있었다.


울림과 네온, 그리고 열광의 한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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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끄적거림을 아껴주시고 멋진 공연의 청중이 될 기회를 주
신, 유 포스트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유포스트
사원들 사이에 끼어 공연을 보게 되고, 인사를 나누게 되어 더욱
뜻 깊은 자리 였네요... 다들 즐거운 시간이 되셨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