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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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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를 찾아서.


BY somjingang 2002-08-28

밤 9시 30분, 아이들의 이부자리를 펴주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 끈을 바싹 조인다.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를 생각해야 하는건
우리가 늘 가던 학교의 운동장이 공사중이어서이다.

또한 내아이가 학교엘 다니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가 밤엔 문을
꽁꽁 닫아 놓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를 유난히 사랑(?) 하시는 교장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을 개방하면 학교가 지저분해 진다는
이유로 학교 운동장 개방 시간을 일몰까지 라고
지정해 놓았으므로 우린 감히(?) 그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할 생각을 일찌감치 접어 놓고 있었었다.

하지만 그 학교랑 한참 떨어져서 있으나 밤늦게 운동하는
지역사회민들을 위해 학교운동장을 늘 개방을 해 놓은
다른 학교가 지금은 공사중이라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어디에서 할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고민중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어젠 우리 아이가 다니는 우리집 근처의
그 학교가 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학교보다 쾌적한 조건의 그 운동장을 돌면서
당분간은 이곳에서 운동을 할수 있으려니 싶어
지극히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운동장을 돌았었다.

그런데 이제 막 조금 흥이 오르려는 순간, 누군가 우릴 향해
프레쉬를 비추더니 나가주란다.. 아마도 숙직교사 였던 것 같은
그 사람은 정중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 볼수 없는 커다란
목소리로 빨리 나가 달라고 소리쳤다.

참, 기분이 되게 나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학교는 넓은 의미로 보면 공공건물이 아니던가!!

할수 없이 그 학교를 ?겨나와 근처를 배회(?) 했다.
어디가 괜찮을까... 모처럼 맘먹고 시작한 운동이
막 6개월을 넘기려는데 이쯤에서 멈출수가 없는건
같이 뛰는 그 엄마나 나나 매 한가지 생각이었다.

조금 많이 걸었다 싶은 곳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다. 공원이어서
그곳에서 운동삼아 돌만한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작은 공간을
빙빙돌며 빠른걸음으로 걸어 보았다.

비가 온뒤 땅은 향기로운 흙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과 나무 또한 자신의 향기를
한껏 내품고 있는 공원을 도는 동안 우리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래, 오늘은 그만 벤취에 앉아
스트레칭이나 해볼까... 싶었던건 순전히 흙과 나무가
풍기는 그 비릿한 향기로움 때문이었으리라.........

늦게 산책삼아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우리를 지나칠뿐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생각하며 시원한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수풀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가을을 재촉하는 여름밤은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왔다.

그 속에서 내 눈길을 잡아 끄는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유난히 하얀 나무 줄기와 몸체가 두드러져 보이는 그 나무,,
자작나무였다.
시베리아의 동토가는 길 어디메 쯤,
영화 '안나 까레리나'에서 귀족들이 마차를 몰고 가던 숲속
에서나 볼수 있을것 같은... 자작나무였다.

아, 지난 가을 오대산을 여행하면서 본것도 같았다.
벌써 낙엽든 잎들을 거의 떨군 산속 길가에서 하나씩 만나지던
자작나무는 늦가을 쏟아지던 햇살아래 유난히 하얀 몸체를
드러내놓고 몇개 남은 노란잎새를 반짝이고 있었지.

그러니, 먼 북방의 나라에서나 숲을 이룰것 같은
그 자작나무가 이곳 여기 이 작은 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나를 흥분시킬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의심이 가기도 했다. 이게 정말 자작 나무가 맞을까..
가지 하나를 꺾었다. 인터넷이나 식물도감 같은데서
찾아보면 확실히 알수 있겠지 싶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늦을 거라던 남편이 먼저 와 있었다.
군 생활을 강원도 깊은 산 어디에서 했다는 남편이 먼저
그 자작나무를 알아보았다.
자작나무가 맞다고 했다. 군대에서 많이 잘랐던 나무래나...
땔감으로 아주 좋았기 때문에 겨울에 자작나무를 많이 잘라서
태워 보았노라고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자작나무 줄기를 만지작 거리며... 갑자기 나는
강원도 깊은 산 어딘가에서 영화 '집으로 가는길'에서 처럼
가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찰랑거리던 자작나무 숲을 보러가고
싶어졌다. 아직 가을은 멀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