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2

오백만원 보다 더 값진 오십만원


BY 잔 다르크 2001-06-02

이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냥 살아졌다고 할까?
친정피붙이, 친구, 아이들친구엄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복잡한 사연,
구정물 쏟 듯이 퍼부었 건만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준 게
고맙기도 하고 염치가 없다.
그네들이라고 애끓는 사연이 왜 없으랴마는
더 답답하단 이유 하나로
고스란히 잠 못 이루게 한 밤이 얼마 였을까?

"내다, 큰 아 통장번호 함 불러 봐라!"
또박또박 번호를 야무지게 부르곤
"말라꼬 그라요?"
"한 오십 만원 넣어 줄라꼬!"
마른하늘에 날 벼락치는 줄 알았다.

넥타이 메던 직업을 가졌던 게
그렇게 기막힐 줄 누가 알았으랴!
처음, 구조조정으로 굳게 닫힌 문을 뒤로 하고 나설 땐
'이삽십 년을 얽어 맨 쇠사슬에서 놓여 난 셈치지 뭐!'
그렇게 위로를 했다.
그러나 막상
오십 줄에 들어서는 사람을 반기는 곳은 많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눈 높이를 낮춰보자고 이야기를 하면
도리어 역정만 낼뿐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이 반복되었고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나는
이 곳 저 곳에 사정도 하고 머리를 조아려
홀로서기를 시도해야 했다.

오로지 어미라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자존심은 장롱 속에 쏙 집어넣었고
낯 부끄러움을 무릅쓸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친정에서 양식을 댔고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생활비는 사고로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지원금과 무이자 대출을 받아 다달이 메꾸어 나갔다.

방학에 내려오는 큰 아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선 해 준 친구 덕분에
한 학기에 필요한 용돈을 마련하였고
동생들 책값과 생활비를 보탰다.

어렵사리 구해 준 분을 생각해서라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란 말을 새겨 듣고,
'열심히 잘 가르친다' 는 소릴 듣게 해 준
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또한 피붙이 이상으로 애 태우며 동분서주한 친구는
오늘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한 생명줄이었다.

안일했던 지난 날에
대가라도 치르 듯...
컴퓨터배우랴, 자격증시험치랴, 강사교육받으랴, 치료다니랴,
내 힘에 버겁도록 헉헉대다 보니
만 이년이 살아졌다.

"엄마! 아빠가 제 통장에 오십만원을 보내셨어요."
당연시 하며
아무 생각없이 받았던 예전의 오백만원 보다
더 값어치 있는 오십만원 이었다.

덕택에 이천 일년 오월의 가계부는
참으로 오랫만에
한결 토실토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