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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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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산책


BY 다정 2002-08-20

개학이 코 앞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이번주.
아침부터 서둘러 신주머니,책가방을 빨아 널면서
괜시리 마음이 울적하였다.
좁은 베란다에는 남편의 실수로 술에 젖은 아이의 책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볕을 받고 누워 있고 눈에 뜨이게 쌓인 먼지들도
삐죽이 눈으로 들어 오고,
다른 날 같으면 부산을 떨면서 먼지를 털어 내었을텐데
뭔지 모를 서글픔에 그냥 모른척 해 버렸다.

둔탁해진 머리 속을 마냥 두고 있으려니
조갈증이 들고
슬리퍼를 끌고선 미장원으로 갔다.
몇년 동안 단골이 된 그 주인은 이사 날짜를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웃음을 연신 흘리고 ,이사 소식이 전해진 미장원은 손님으로 북적,
다시 검은 색으로 염색하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반항하듯이 옅은 갈색으로 물을 들이면서
그저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듯이
실데없는 말만 실컨하며 시간을 죽이다 보니
딸 아이도 마지 못해 문을 밀며 들어 오면서 하는 말
ㅡ너무 짧게 자르지 마세요..
ㅡ안돼,,아줌마 이사 가면 머리 어디서 자르려구
걍 팍 잘라뿌라

둘다 미장원을 나오면서 말도 하지 않고
현관을 들어서니 다시 숨이 탁 막히는 것이
또 서둘러 나가 버렸다.

아이와 가로등이 켜진 길을 걸어 오면서
지나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괜히 눈물도 나고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는 듯
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럽던지.....
부쩍 큰 딸 아이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바라는 여러가지도 많이 있을텐데..
겉으로 대충 무마시키는 이 에미의 손을 꼭 잡으면서 그런다.
ㅡ엄마,,그래도 우리 행복하잖아...

아이를 마주 볼 수가 없다.
남들은 어떻든 내 식으로, 내 편한대로만 아이에게
있는 현실 그대로 모든 것을 이해 받으려 한
내 자신이
왜 이리
초라하고,,작게만 느껴지는지.....

동네 길목에 희뿌옇게 걸린 달을 무심히 쳐다보면서
아이에게 내 마음의 여림이 혹시라도 보여질까봐
툭툭
발길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