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여고까지 아이는 방학도 없이 매일을 등교한다.
사격연습을 하기 위함이다.
고등학생들이 방학하기 전 까지는 매점에 문이 열려 밥을 먹을수 있었지만
며칠전부터 모두 방학에 들어갔다한다.
매점문이 닫히고...
때아닌 도시락을 싸는 수고스러움이 졸지에 찾아든다.
샌드위치도 싸주고 볶음밥도 싸주고....
오늘 아침은 김밥으로 도시락을 만들어준다.
" 엄마, 맛잇게 싸야돼. 그리고 짜지않게... 그리고 또 계란도 많이넣고
홍당무는 넣지말고 햄은 많이 넣고... "
조잘조잘 주문도 많고 참견도 많다.
내 국민학교시절.
난 초등학교는 다녀보지 못하고 국민학교만을 다녔다.
그시절에는 초등학교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소풍과 가을 운동회 때는 꼭 김밥을 ?驩駭?
유일하게 색다른 음식을 먹을수 있는 기회가 아마도 김밥을 싸는
소풍과 가을 운동회가 아니었나~ 싶다.
봄과 가을, 한해에 두차례 있는 소풍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유난히 어느해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이 난다.
국민학교 몇학년 때인지는 뚜렷한 기억에 없어도
국민학교 저학년쯤 아니었나 싶긴한데...
학교 운동장이 좁은 관계로 청파동인가? 효창운동장이 우리의 운동회 장소엿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도 했고 달리기와 오재미 터뜨리기도 했엇지 아마.
난 기억되기에 항상 청군을 했던거 같고.
또한 청군이 매번 이긴것도 같다.
오전의 운동회가 끝나면 점심시간.
쪽진 머리의 엄마는 운동회라고 없는 시간을 짬내어 내게로 김밥을 싸서는 오셧었다.
거의 모두가 지글지글 볶은 파마의 짧은 머리였는데
유독 우리 엄마만은 쪽을져 비녀를 꽃은 할머니의 머리였다.
그 머리 스타일부터가 난 아이들에게 무지 창피했었는데
도시락을 연 엄마의 손이 왜그리 야속하던지...
사이다나 찐 계란 과자 부스러기는 고사하고
열어놓은 도시락은 무늬만 김밥이었지 하얀쌀에 통깨만이 듬성듬성 박혀있어
서둘러 도시락을 닫아야만 했었다.
둘러본 주위의 도시락은 그야말로 형형색색
단무지와 계란의 노란빛과 시금치의 녹색
햄과 홍당무의 주황빛.
그리고 한 옆에서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을듯한 통닭냄새.
사이다...찐계란. 그리고 과자들...
" 어여먹어. 배 ?樗뼜姆?.."
엄마도 내 뒤틀린 심사를 아셧는지
손에 쥐어주는 김밥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 이씨, 나 안먹어 "
" 왜에? 왜 안먹어? 에미가 챙피하냐? "
" 엄마도 창피하고 김밥이 뭐 이래? "
쏟아지는 눈물이 주체할수 없어 주먹손으로 눈자위를 훔친다.
부아가 끓고 심통이 사나워 진다.
씩씩거리며 보자기로 덮어놓은 김밥통을 발로 툭 건드리고는 다시금 주위를 훑어본다.
모두가 즐겁다.
모두가 맛나게들 점심을 먹고있다.
슬그머니 내 손을 잡은 엄마는 주섬주섬 도시락 보따리를 챙겨서는
후미진 곳으로 날 데리고 가신다.
다시 풀러놓은 도시락 보따리.
보따리라고도 할거 없이 달랑 소금과 통깨만이 김위에 밥과함께 올려져있는
그 김밥 도시락을 다시 내 앞에 풀러놓는다.
" 여긴 아무도없잔여. 그러니 어여먹어. 그래야 이따 띰박질 잘 할수 있지 "
자꾸만 자꾸만 목울대가 아파온다.
운동회 날이라고 아침부터 들떠서는 아침밥도 시원치 않게 먹었으니
배에서는 연신 쪼르륵~ 소리가 난다.
엄마가 강제로 쥐어주는 김밥한개 목구멍으로 밀어넣는데
목이 메인다.
가슴께를 주먹으로 치며 캑캑거리니
엄마는 얼른 물을 한컵 따라주며 내 등을 두드려 주신다.
" 체할라, 천천히 먹어 "
겨우겨우 요기만을 면하고
왕사탕을 볼따구가 터져라 입에문 아이들과 번데기와 소라봉지를 손에쥔 아이들...
그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 에미... 지금가랴? 아니면 이따 끝나면 같이가랴? "
" 지금가. 이따 나 혼자갈텨 "
마치 가난이 엄마의 죄인양.
그래서 김밥도 그모양으로 싸온것이 모두가 다 엄마의 불찰인양
난 계속해서 엄마에게 눈도 맞추지 않고 퉁명스레 말을 했다.
" 그려, 그럼 엄니 지금갈테니 이거 이따가 맛난거 사먹어 "
손바닥에 부리나케 쥐어주고 종종걸음으로 엄마는 뒷모습만을 보이셧다.
슬그머니 손바닥을 펴보니 일원짜리 지전한개.
언제 부아가 났었냐는듯 나는, 하늘을 나를듯 그렇게 붕붕 뜰수가 있었다.
동무들과 어깨동무로 몰려나가서는 교문밖에서 무얼 사먹었는지는
확실한 기억에는 없다.
아마도 번데기나 소라를 사서는 쪽쪽 소리가 나게 빨지 않았을까?
그냥 추측뿐.
왜 그리도 그시절에는 가난했었는지...
일년에 두 세번있는 행사에 깁밥조차 제대로 싸줄수없는 그 가난이
분명 내 죄도, 더욱이 엄마의 죄는 더더욱 아닐진데.
마치 나와 엄마의 죄인양 엄마에게 심통 부리고
동무들 보기가 너무 창피해 도시락을 감추고...
그것도 모자라 먼데 후미진 곳에까지 가서는 숨어 먹었어야 했으니
내 어린날의 기억에 그리도 강하고 아픈 추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겠지.
딸아이는 제 친구들 몫까지 많이 담으라고 한다.
엄마처럼 요즘에 누가 김밥을 손으로 싸느냐고.
모두가 김밥나라에서 김밥을 사서 싸 온다는것이다.
그러며 친구들이 엄마의 김밥이 맛잇다고 한다며 많이를 특히나 강조한다.
배 부른 시절이다.
모든게 흐드러지게 넉넉한 시절이다.
집에서 싸는게 귀찮다고 아이의 도시락까지 돈으로 해결하는 참으로 편한 세상이다.
내 엄니가
조금만 더 사셧더라면...
이 좋은 세상에서 맛난것도 실컷 드시고.
철부지 딸년이 싸드린 김밥맛도 보셨을텐데...
지금은 먼길 가시고 없는 내 엄마.
내 자식을 키우며 내 어린시절을 회상하고...
아울러 징그럽게도 가난해 엄마나 나나 무진 고생하던 그시절이...
지금은 추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