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래로 아픈 사람 치유될 수 있다면..."
'흙피리' 창작CD 펴낸 산골소년 '한태주'와 '한치영'의 음악과 삶
조호진 기자 tajin@ohmynews.com
▲ 행복한 수업과 음악에 취해사는 열 여섯 산골소년 '한태주'
ⓒ2002 박철영
'생태가수' 한치영(47), 그의 노래와 얼굴에서 '쫓겨난 인디언 원주민'과 '패망한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쓸쓸한 주문소리와 흔적을 보았다. 그것은 문명의 침략자들에게 땅과 문화의 터전을 빼앗긴 부족의 한(恨) 같은 소리 혹은, 도회지 새들을 생명의 숲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부는 신호음 같은 것이었다.
제3회 MBC 강변가요제 '결사대' 트리오로 금상 수상, ROTC로 군복무, 국민대 경영학과 졸업, 청와대 경호원으로 대통령 경호활동에서 죽염제조, 목장 소젖짜기로 급격한 이동과 노래…. 그리고 1집 음반(91년 '할미꽃') 2집 음반(96년 '이것 참 잘 돼야 할 텐데') 3집 음반(99년 '여보게! 어디에 행복이 있던가') 4집 음반발표(2000년 '광개토대왕')…. 한치영 그가, 마흔 일곱 해를 살며 남긴 주요 경력이다.
한태주의 '하늘연못' 듣기
한치영의 '여보게 행복이 어디에 있던가' 듣기
그는 전두환 정권시절 대통령 경호원으로 근무했다. 당시의 청와대 경호원이면 세도를 부려도 탈이 나지 않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는 노래에 대한 그리움을 따라 권력과 욕망의 도시를 떠났다. 집착과 욕망대신 기타 하나 메고 식솔과 함께 떠돌이로 살아온 그는 집도 절도 없다. 그렇게 유랑생활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권력과 인기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선택한 생명의 삶
▲ 생태가수 '한치영'의 네 번째 음반 '아! 해남'
여보게 어디까지 가나
여보게 어디로 가나
무엇을 찾으려 가는가
무엇을 얻으려 가는가
여보게 무얼 생각하나
여보게 무얼 원하나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가지면 가질수록
초라한 삶의모습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삶의향기
여보게 어디까지 갔나
여보게 무얼 보았나
어디에 행복이 있던가
어디에 사랑이 있던가
(한치영 작사·곡·노래 '여보게' 전문)
그는 유랑생활에서 세상과 자신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경쟁과 폭력, 정보와 욕망의 바다를 떠다니며 생명을 해치고 자연을 파괴하는 대가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세월을 사는 동안 집착을 내려놓고 얻은 그의 결론은 "가지면 가질수록 삶의 모습은 초라해지고 나누면 나눌수록 삶의 향기는 커진다"는 것이었다.
▲ 생태가수와 산골소년의 협연. 관객은 산새, 물소리, 계곡 등...
ⓒ2002 박철영
그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재화(財貨)와 이권이 아니라 생명의 소리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떡과 쾌락에 마음둘 뿐 생명과 상존의 소리에는 관심이 없다. 떡에만 관심을 쏟는 민중들의 손벌림에 나자렛 예수는 꾸짖고 꾸짖으며 가엾어했듯이 어차피 저잣거리의 민중들은 왜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우르르 몰려다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하며 성을 내고 돌을 던질 뿐이다.
어차피 떠나는 자는 떠나고 남는 자는 남아서 분탕질을 하는 게 세상살이다. 그래서 그는 청계산, 무등산, 해남, 순창 등지를 떠돌다 최근에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하동 악양을 은신처로 삼았다. 유랑생활의 동반자인 하염없이 좋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바람과 물과 하늘은 아무런 꾸지람도 없이 그의 노래를 들어주었고 털복숭이 수염도 못났다고 흉보지 않았다.
자연과 생명의 소리를 담은 열 여섯 산골소년의 '하늘연못'
소년의 교실은 지리산 산자락과 악양(박경리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의 평사리)의 짙푸른 들판이다. 그의 선생은 하늘과 바람과 계곡…. 선생과 그의 친구인 새들은 청아한 소리로 소년의 아침잠을 깨운다.
▲ 김지하 시인은 태주의 흙피리 소리에 대해 '흙과 바람의 소리'라고 극찬했다.
ⓒ2002 박철영
열 여섯 산골소년 태주는 생태가수인 아버지 한치영(47) 어머니 김경애(46)씨와 산다. 음악을 좋아하는 태주는 초등학교를 끝으로 제도교육과의 결별을 원했고 부모들도 선뜻 동의했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결박하는 제도교육의 폭력에서 벗어난 태주는 자신의 해방구인 계곡을 쏘다니거나 물놀이를 하며 숲의 향기에 취해 온전하게 산다.
태주의 학교에서는 노는 게 수업이다. 물과 바람과 놀고 풀잎과 어울리면서 생명의 숨을 익힌다. 흙피리 연주자인 그는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그를 빼어난 연주자와 작곡가로 키운 것은 혹독한 연습이나 비싼 수강료가 아니라 노는 대로, 느낌을 갖는 대로 허락한 자연이었다. 만약 태주가 제도교육에 얽매였다면 그의 소리는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냥 열여섯 소년에 불과했을 것이다.
태주는 최근 '하늘연못'이란 타이틀로 흙피리(일명 오카리나) 연주음반을 출시했다. 이 음반에 담긴 10곡은 태주가 지난 2년 동안 숲과 바람, 물소리에 취해 만든 창작곡이다. 대표 곡인 '하늘연못'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담겨 있고, '물놀이'는 계곡 물에서 놀던 느낌을 담은 경쾌한 곡이고, '고구려 벽화의 노래'는 벽화의 감동으로 만든 곡이다.
▲ 권력과 물욕 대신 생명의 삶을 선택한 두 부자의 한가한 산책.
ⓒ2002 김도수
태주가 흙피리를 불면 그의 친구들인 새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새들은 태주의 흙피리 소리에 취해 아무 평도 하지 않았지만 이 소리를 듣던 김지하 시인은 '외로운 한 신의 소리'라고 치하했고 송순현 정신세계원 원장은 '천상의 맑은 기운을 담은, 이 땅을 살려내는 하늘의 음악이다'고 감탄했다.
흙피리는 흙과 물과 불의 조화로 만들어진 자연의 악기다. 이 악기는 먼 옛날 산봉우리에 올라가 이웃 마을과의 연락을 주고받는데 쓰여졌다고 한다. 그런 만큼 흙피리는 어떤 악기 소리보다 멀리 퍼져나가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악기로 평가받고 있다.
한치영씨는 "우리 국악기 중에 '훈'이라는 이름의 작은 종 모양의 악기가 있었는데 이것이 흙피리의 일종이다"며 "200여년 전 소리를 처음 접한 한 이탈리아 사람이 이 악기를 가져가 구멍을 몇 개 더 뚫은 뒤 서양음계인 7음계로 만들어 오카리나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악기로 유럽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이 악기가 사실은 우리의 고유 악기라는 설명이다.
김지하 시인은 강화도에서 처음 태주의 흙피리 소리를 들었다. 시인은 소리를 듣고 '흙의 소리요 바람의 소리'였다고 표현했다. 시인은 또 "기껏해야 열 여섯 소년의 소리가 그토록 외로운 것은 인간은 본디 자기존재의 방에 있을 때엔 외롭다"면서 또 "태주는 지금 그 외로움을 날세우기 위해 자연 속에 있다"며 '흙바람'에 담긴 신비의 소리를 영글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도법스님(실상사 주지)은 지리산 실상사 찻집에서 태주의 흙피리 소리를 감상했다. 스님은 그때의 흥취가 "절 마당의 천년 고요가 한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이었다"며 "아름다운 풍경 덕분인지, 멋진 흙피리 소리 덕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고 좋은 기분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 유랑생활 십 수년, 그는 지리산 자락에 새 은신처를 마련했다.
ⓒ2002 조호진
열 여섯 산골소년 태주는 자신의 흙피리 소리로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한다.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되려는 욕망보다 탐욕의 가시에 찔린 부상자들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은 스승이자 친구인 자연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노래로 아픈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면...'
밥 딜런과 신동엽 시인을 존경한다는 그에게 속된 말로 몇 가지에 대해 물었다. 그 또한 천상이 아닌 세상에 거주하는 이상 세상이 묻는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호원이면 남부럽지 않은 직업인데 왜 그만두었는가?
"틀 속에 갇힌 삶이 견딜 수 없었다. 통제된 규율과 극단의 상하조직 체계와 사람을 감시해야 하는 업무는 형벌 받는 삶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일년 정도 근무하다 그만두었다."
-속된 말로 '뜨는 가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가.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탄 뒤 노래하면 인기를 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음악은 위대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연의 모든 생명에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음악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세계가 커지고 깊어졌다. 그 깊이에서 음악과 명상, 수행으로 이어졌다."
▲ 한태주 군의 창작연주집 '하늘연못' 쟈켓 표지.
-요즘의 음악과 자신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철학이 없는 노래들이 인기와 돈과 명예를 독차지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음악의 주류가 바뀌었다면 시대와 민족의 정서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 혼탁한 음악판에 휩쓸리지 않고는 어떤 좋은 노래도 살아남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특히 문명을 거부하는 나와 태주의 음악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우리 부자는 음악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의 아픈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다."
-태주의 음반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어떻게 감당했는가.
"태주를 아껴주는 주위 분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물론 3천여만원의 제작비를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음반판매는 인터넷과 환경·시민사회단체 등을 통해 유통시켜 판매대금의 일부분을 이들 단체들의 활동에 보탤 생각이다."
-앞으로의 음악활동 계획은 어떤가.
"가을이나 겨울쯤에 5집 음반을 낼 계획이다. 5집에 담긴 곡들은 신동엽, 박남준 등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부쳤다. 앞으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환경·시민단체들과 그리고 지역민들이 원하는 자리면 어디든 찾아갈 생각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발품을 아끼지 않고 노래할 생각이다."
한태주군의 음반판매 사이트는 www.freewindy.com과 www.mindvision.org이다.
2002/08/14 오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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