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42

생각이 많은 휴가


BY k2432 2002-08-10

아침엔 새소리에 잠을 깨고 앞뜰뒤뜰에 심은 채소들로 아침지어먹고
아이들은 낮동안 데워놓은 양동이 물에 물놀이를 하고...
마을앞 개천에서 빨래도 하고..
저녁이면 모기향피워놓고 옥수수 구워먹고 ..
하늘의 별보며 잠드는곳...

이곳은 우리 시댁 영천이라는 곳입니다.
24살에 결혼해서 이제는 아이도 둘이랍니다.
10살차이 나는 남편과 결혼할때 시부모님들은 저를 참 이뻐해주셨습니다.
혼수도 하지말고 시댁에라도 갈라치면 밥도 손수지어 저에게 주시고 돌아올땐 딸네집에 보내듯 채소도 전부 손질하여 싸주시고 미숫가루며 쑥떡을 손수 해서 챙겨주시곤 하시죠
그고마움을 언제나 갚을지 늘 마음에서만 생각해왔었어요.
한해두해 여름휴가를 물가로 가서 맛있는것도 먹고 좋은구경도 하고
신나게 놀다 왔어요.
근데 이번 휴가는 시댁으로 갔답니다.
출발할땐 시댁근처에 있는 계곡으로 휴가를 가자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주위모든것이 휴가지보다 백배 천배 더좋은 조건인데다가
연세가 더 드시면서 기력이 너무 없으신거 같아 시댁있는동안 약이라도 해서 끼니때마다 챙겨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휴가를 시댁으로 정하고 갔는데...
주말에 가서 하루자고 올때의 기분과는 정말 틀리더라구요.
우리부부가 강으로 바다로 휴가가서 즐길동안 부모님들은 이 땡볕에 밭에서 논에서 힘들게 일하셨을걸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저며오더군요.
연세도 77이신데 그 더운 고추밭에서 하루종일 일하시고 집에 오시면 돈이 아까워 고기한번 사드시지 않고 그저 된장한가지에 세끼를 드시고...언제 얻은지 모를정도인 과일을 광에도 꼬깃꼬깃 싸놓으셨다가 꺼내주시고 맛있게 먹는 제 모습 보고는 참 흐뭇해하시는 분들이시죠
평소에도 그런 모습들을 보아왔지만 이번에 직접 밭에도 가보고 논에도 가보니 저는 정말 한시간도 못 서있겠더라구요.
이렇게 땀흘려 수확한 고추며 깨, 녹두, 쌀...
보따리 보따리 싸주시는 낙으로 사시는 두분...
정말 한톨한톨 아껴먹고 아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합디다.
돌아오기 전날 저녁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왜그리 생각이 머리속에서 뱅뱅도는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어요.
주말에 시댁엘 올때면 세끼밥이나 먹고 앞 개울에 놀러갔다가 저녁이 되면 싸주시는 곡식들 차에 싫고 휑하니 와버리고...
한나절 법석대고 자식들이 돌아서면 부모님들은 또 얼마나 우리를 그리워했을까...
늙으신 나이에도 자식들 줄려고 힘들어도 더워도 어지러워도 이악물고 고추를 땄을 어머님..아버님...
다짐했습니다.
이제 저희 식구의 휴가는 시댁이라고..
꼭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조금이나 하루라도 부모님 곁에서 진지를 올려드리기 위해서말입니다.
정말 생각이 많은 휴가였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핑계로..주말에 시댁가는일이 무슨 행사처럼 여겼던 나자신...
정말 많은걸 느끼고 보람있고 행복한 우리가족의 여름휴가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