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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11


BY 녹차향기 2000-11-15

구수하게 보리차 끓이는 내음이 지금 집안에 가득 차 있어요.
저는 물이 팔팔 끓을 때쯤이면 가스불을 작게 줄여놓고
한 십여분 이상을 충분히 보리차가 우러나오기를 기다려요.
그럴 때 뜨끈뜨끈한 보리차 한잔을 따라서 후후 불어가며 마시고 나면, 하루의 피곤은 싹 가시는 느낌이 들거든요.
보리차 뿐만 아니라 같은 비율의 옥수수차, 그리고 아주 약간의 구기자차를 넣는데, 저희집 물맛이 아주 구수하고 좋다고 사람들이 좋아해요..

저희 시어머님은 물을 팔팔 끓을 때 바로 꺼버리는 걸 사실 더 좋아하세요.
그래야 물 맛이 살아있다고 하시던데요.
그래서 저는 어머님께서
'이제 보리차 불 꺼야지..'
하시면 사실 금방 끄지 않고 조금 더 있다가 끄거든요.....
아마 어머님은 가스를 아끼시려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아이가 세살적에 보리차 끓여놓은 주전자에 다리를 데인 적도 있고, 삼년전엔 펄펄 끓는 보리차에 제 왼손을 크게 데여 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던 일도 있었어요.(지하철 안에서나, 버스안에서 왼손 새끼손가락부근이 빨갛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예요.... ^.^;)

그래도 아직까지 시중에서 파는 생수보다는 이렇게 펄펄 끓인 보리차가 좋은 것은 일종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아요.

결혼하기 전 처음 어머님을 뵙던 날도 그런 말을 제가 했던 것이 생각나요.
'어머님. 물이 참 맛있어요.'
옥수수차에서 우러난 달콤한 맛이 얼마나 입안을 감싸도는지 어쩜 물을 하나 끓여도 저렇게 정성스럽고 맛있게 끓이실까 하고 무척 신기했던 생각이 나요.
저희 친정집에서는 아이들 눈 좋아지라고(친정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시력이 나쁘거든요..저만 빼고.)
늘 결명차를 끓여주셔서 씁쓸한 물맛만 보다가 그 달콤하고 구수한 맛에 반했었거든요.
결혼이후론 저두 늘 그렇게 끓이죠.

저희 시어머님은 무슨 음식이든 잘 만들기도 하시지만, 또 무슨 음식이시든지 참 잘 드세요.
오늘 저녁엔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어요.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식사를 잘 하세요.
과식하지 않으시려고 조심하시고, 몸이 불편하셔서 식사 생각이 없으실 때도
'내 몸 내가 챙겨야지... '
하시며 억지로라도 식사를 좀 하시고 약을 드시지요.

저두 결혼전엔 위장병이 심했었어요.
불규칙적인 식사습관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텐데.
늘 속이 쓰리고 아프고, 신물이 넘어오고, 때론 참을 수 없는 고통까지 있어서 자다가 일어나 약을 먹곤 했었거든요.
근데, 지금 그 위장병이 다 없어진 큰 원인이 바로 시어머님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왜 군대에 가면 남자들이 고되고 힘든 병영생활에도 더 건장해지고, 늠름해지고, 살도 좀 더 찌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변하잖아요?
바로 규칙적인 생활 때문이라고 하대요.
시어머님 밥상 봐 드리기위해 꼬박꼬박 같은 시간에 식사 준비를 하고, 별로 식사 생각이 없어도 어르신 혼자 드시게 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니 열심히 따라서 먹었지요.
그랬더니 지금은 얼마나 건강해졌는데요.
위장병 없어진지 오래되었어요.

지금은 너무너무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예전에 빼빼 마르고 비실비실 하던 모습이라곤 하나두 없어요.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는 늠름한(?) 아줌마가 되었으니깐요.
저희 시어머님두 아주 씩씩한 할머니시구요. *.^
하루에 운동장을 열바퀴씩 돈다는 거 사실 어려운 일이잖아요.
어머님 연세에... (물론 달리지는 않으시고 빠르게 걷는 거라곤 하지만, 힘든 운동인데..)

식사만큼 훌륭한 보약은 없는 거 같아요.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맘 편안히 드세요.
속상하신 일이 있어도 식사 하시는 동안은 잠시 잊으려고 해 보세요.
그리고 맛있다, 맛없다 너무 탓하지 마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받은 음식이 젤로 맛있고 좋다..
하고 흐믓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세요.
저절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영양이 넘치는 음식이 되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 줄거예요.

저희 시어머님께서 아무 음식이나 맛있게 드시니깐 저두 음식하는 재미가 나고요.
애써 음식을 했는데, 그저 무뚝뚝하게 아무 감상도 없이 식사를 하거나 젓가락가지고 깐죽깐죽 억지로 마지못해 먹는다는 듯 식사를 하면 정말 몇시간 동안 부엌에서 고생한 주방장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잖아요.
식탁 앞에 앉아서는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말을 아끼지 말았으면 해요.

'아유... 맛나다... 어째 나는 나이 먹어갈수록 이렇게 먹는 게 더 좋은 지 몰라. 수저 놓기 싫어라...'
하시며 아이처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참 좋아요.
그저 변변찮은 그저그런 음식들인데도요...

어머님께서 보리차물 끓인던 것을 이제 찬 물에 식히고 계세요.
이제 온 가족이 단란하게 둘러앉아 과일을 먹을까 해요.
밤 늦게 먹는 과일이 좋지 않다지만, 저녁마다 먹어 버릇해서 인지 아이들이 꼭 찾아요.
같이 뉴스를 보면서 과일을 먹고 하루를 접어야겠지요?

어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지 참....


곧 11월이 끝나고나면 달랑 12월 한 달이 남아 2000년이 다 가고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겠지요?

마무리를 잘 해야하는 나날들이예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으셨어요.
평안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