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잘 사귈줄을 모른다.
내속에선 늘 수많은 언어가 풀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건만
정작 현실에 서면 입을 닫고마는 성격탓이리라..
그런 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15년전쯤 직장을 다니면서 사귀던 다섯친구를 빼고는 새로이 누군가를 사귄 일은 참으로 한참만인듯하다..
각 구운 빵의 향기로움과 따뜻함.
또는 산기슭 풀숲에 또로록 떨궈지는 한방울 이슬처럼 내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오래간 잊었던 소리내어웃는 쿤 웃음을 만들게도 해주는
그런 친구가 새로이 생겼다.
내가 여기 이곳 상가에 든지 햇수로 5년쯤 되나보다.
5년이 다되도록 이웃들과는 그저 수인사 정도나 나눌줄 알뿐, 여느이들처럼 한가로이 퍼질러앉아 웃거나, 수다를 떠는 일도 없이 내 매장, 내 자리만 지키고 앉았던 나였다.
그런 어느날, 아니 서너달쯤전에 그녀가 왔다.
'색종이'란 간판을 걸고 아동복매장이 앞집에 들어섰다.
색종이의 주인장은 그닥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 크기에 흔한 단발 퍼머, 동그란 얼굴과 웃으면 살짜기 패어지는 볼우물을 가진 이였다.
그리고, 동그란 그녀 얼굴에 잘 어울리는 금테안경을 걸고다닌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긋 웃으며 눈인사만 나누던 그녀가 내 친구가 된것이..
친구란 영화에 보면 '오래 곁에 두고 사귈수 있는 이'라고 친구를 명명했다.
그녀, 색종이는 꽤나 밝은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open을하고 채 1달이 되기전에 이 집 저 집 커피잔을 들고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이웃의여러이들과 나이의 적고많음을 떠나 가깝고 허물없이 지내는듯했다.
두어번 우리가게에도 들렀지만, 좀 서먹하게 지냈는데, '동갑'임을 알고 저도 나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우리매장에 하루의 반 이상을 머문다.
늘 수시로 손님이 드나드는 우리가게의 특성상 나는 늘 내 자리에 있고, 드문드문 간간 손님이 드는 그녀 가게의 특성상 그녀가 늘 내게오는 편이다.
손님만 없으면 쪼르륵 달려오는 그녀..
달려와서는 조잘조잘 잘도 떠든다.
바빠지기 시작하는 시간엔 종업원 그 이상이 되어 재바른 몸짓으로 내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커피생각이 날즈음이면 진하게 태운 커피잔을 내게 살포시 놓고 가는 그녀..
나는 무릇 이기적인 여자이다.
먼저 베풀거나 나누는 일에 꽤나 인색하며, 다가드는 이의 마음을 읽는데에도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해서 그녀를 받아들이는 일도 좀은 시간이 필요했다.
쿵쾅대는 음악소리에 손짓 몸짓을 흔들며 들어서곤하는 그녀 색종이를 보는 일은 이제 내 일상이 되었고, 작은 기쁨이 되었다.
색종이에게는 넘치는 에너지가 보인다.
'깔깔'소리내어 웃어본일, 배를 잡고 눈물을 질금거리며 배고플정도로 웃어본일이 드물었던 내게,조금씩 제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그녀..
오늘 아침엔 청소를 채 끝내기도 전에 크래커봉지를 뜯어쥐고는 입을 오물대며 그녀가 내게 왔다.
"야......아"
"왜.....애?"
"이거..먹자!"
"너 땜에 미쳐..아침부터 과자봉지 들고 다니니?"
"배..고..퍼...서..."
그러면서 난 그녀가 내 입에 밀어넣는 크패커를 몇쪽 받아먹었다.
평시였으면 까칠했을 아침 군것질이
맛있다.
아니, 고소하고 바싹하다.
그건, 그녀의 또다른 맛이기도 하다.
입속의 크래커가 채 다 없어지기도 전에
"헤이..껌..우리 라면 끓여먹을래?"
껌..은 그녀가 내게 붙인 별명이다.
볼륨있는 제 가슴에 빗대어 조금 미비한 내 가슴을 일컫는 별명이다.
12시도 되기전 라면을 솥째 끓여들고와서는 내앞에 디민다.
"니 땜에 살찌겠다.."
"괘않다..아줌만 모름지기 굵직해야 한다.."
그렇게 먹고 나누는 그녀와의 일상은 맛있고,재밌고, 독특하고 향기롭다.
이즈음..동네에선 말들이 참 많다.
"색종이..넌 장사 않하고 매일같이 D매장에 붙어살텨?"
그러면 그녀는 푸하하 터질듯 웃으며 말하기를..
"나,,미쳤시유..돈도싫어..친구가 좋아.."
"울 앤 이쁘쥐?"
나는 그녀때문에 웃음이 많아졌다.
..
이제 나는 수년을 쓸고닦아온 이곳을 떠날 채비중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웠고 거기에 맞춰 매장의 물건은 조금씩 비워지고있다.
나날이 한귀퉁이 한귀퉁이 비워져 가는 매장 구석을보고 있노라면 수년정든 이와 이별하는 허전함처럼 힘이 빠진다.
오늘아침엔 가게를 맡을이와 계약서에 둥글고 굵직한 약속의 도장을 눌렀다.
예전 비해 매출도 줄고 그닥 실리가 없던 곳이어서,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자꾸만 자꾸만 기분이 내려앉는다.
그러고 앉아 그녀와 모닝커피를 나누어마셨는데, 전에없이 색종이는 말이 적었다.
처음엔 내 다리가 예쁘니,니 다리가 예쁘니, 니 배가 볼록하니,내 배가 볼록하니,,,그러면서 시시껄렁 농담을 하던중였는데,
"자, 봐봐봐..이 다리가 한땐 쓸만했는데..."라며 바지자락을 올려붙이며 탱글탱글한 알다리를 쏙 내미는 그녀.
"내다린,,보여줄 순 없지만 니보다 훨씬 이뻐.."
라며 기어이 나는 새침을 떨었다.
"푸핫..그래. 한여름에도 긴바지입고 다니나 보자.."
"색종이야..나 반바지입기전에 여길 떠날거야.."
순간, 저도 나도 잠시 침묵했고 잠시 우울했으며 잠시 생각했으며, 잠시 마음 한자락 휭하니 바람이 일었다.
색종이는 메고있던 밤색 돈지갑 맨밑단에서 신생아손바닥만한 전화번호 수첩을 꺼내놓고
"불러봐"
라고 퉁퉁 부른 소리를 냈다.
내이름 석자를 저 닮은 탱글함으로 적어놓고 핸폰번호를 적어가면서, 중얼 중얼 내 이름을 그녀가 불렀다.
그랬다. 부대끼며 정들어버렸지만 실상 이름조차 잘 모르고 있었던 터였다.
"종이야,, 난 사귀긴 힘들어도 한번 사귀면 잘 안 변해..안 잊어.."
"오냐..씨..그래도 금새 사라질건 아니지?"
"끄덕"
이제 나는 막 이곳을 떠나야하지만,
그녀는 내 인생에 한발짝 선뜻 다가서 친구가 되어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