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꿀맛이었는데 지금은 영 아니야"
음식 맛에 대한 향수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배고픈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음
식을 지금 먹어보니 별 맛이 없더라.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음식 맛은 의구
(依舊)하되 배부른 시절에 살고 있는 우리 입맛이 변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
사시장철 쏟아져 나오는 과일과 야채들, 식상할 정도로 넘쳐나는 음식들이 우리의 입맛
을 잃게 하고 있다. 배가 부른 것, 포만감 이 넘쳐흐르는 풍요함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
다. 배부른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좀 배고프게 살고 싶다. 배고프게 살면서 잃어버린
음식 맛을 찾고 싶다.
"아아 진정 나는 배고프고 싶다. 오늘은 과연 무엇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다. 음식 맛에 조화를 부리는 게 무엇일까. 무엇이 똑같은
음식의 맛을 달라지게 할까. 배고픔, 뭐니뭐니 해도 배고픔이 음식 맛을 다르게 하는
것 같다. 배고픔의 맛이라고나 할까. 조금만 부연 설명을 하면 배고플 때 우리의 식욕
이 10이라 치면 점점 배를 채워감에 따라 그 식욕의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
다. 손맛이라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요리하는 사람이 음식에 쏟는 정성이나
사랑이라 해도 무방하다. 인간이 풍기는 氣의 맛이라고 해도 좋다. 믿음과 사랑이 입맛
을 돋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똑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음
식 맛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릇 맛도 있다. 일테면 밥을 밥그릇에 담을
때와 접시에 담을 때 그 맛이 크게 달라진다. 예쁘고 정갈한 그릇에 서로 조화를 이루
면서 음식을 담았을 때 그 모양과 색깔만큼 음식이 가지가지 독특한 맛을 내게 된다.
물맛이라는 것도 있다.
" 배고픈 시절에 물에 말아먹던 식은 밥 한 덩이는 꿀맛이었다. '반찬이 없으면 물에
말아먹어라' 하며 보리밥에 찬물을 부어주시던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또 누구하고 먹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얼
마든지 달라진다. '누구와 먹었는데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더라' 이런 말을 우리는 종
종 듣는다. 장소의 맛도 그렇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집에서 먹을 때와 야외에서 먹을
때 그 맛이 다르다. 늘 먹는 식상한 음식도 야외에서 먹으면 꿀맛으로 변하는 수가 있
다. 좀 다른 얘기지만 식당 같은 데서 요리사가 어느 방향을 보고 요리를 하느냐에 따
라 음식 맛이 달라진다. 보통 요리사가 등을 보이면서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정갈함과 신뢰감이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손님을 마주 보면서 요리하는 게 따뜻하고
투명해서 좋다. 흔히 일식 집에서 요리사가 조리대 뒤쪽이긴 하지만 손님 앞에 서서 손
님과 커뮤니케이숀을 하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주 이상적인 정경이
다. 패스트푸드나 고급 식당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 따라 매상이 달라지는 것을 새삼
말 할 나위도 없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빛 맛이다. 불빛이 주는 정취라
고나 할까. 아무리 잘 요리된 음식일지라도 식욕을 돋구는 불빛이 없으면 입맛이 없어
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음식의 맛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천차만별의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서 나는 변화무쌍한 음식 맛 타령만을 늘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조금은
배고프게 살고 싶다" 고 잠시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 말이 ' 때론 가난하게 살고 싶
다'는 말로 들려도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게 너무 누리고 살면서 식상하게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배부른 시대에 살고 있다. 배부른
시대에 붙어살고 있는 식상함을 몰아내야 한다. 비만과 성인병이 난무하고 있는 세상에
서 우리는 음식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풍족한 먹거리, 범람하는 수입 식품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유의 미각을 잃어가고 있다. 슈퍼마켓 진열장에 숨어 있는 그
많은 유해식품들 그리고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광우병과 구제역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
하고 있다. 우리가 입맛을 잃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순수한 옛
입맛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조금은 모자라고 배고프게 살아야 한
다. 어머니가 밥그릇에 부어주는 숭늉으로 약간 남아 있는 뱃속의 허기를 달래곤 하던
시절을 잊었는가. 텃밭에 심은 무배추로 손수 김치를 담가서 독에 넣어 마당에 파묻어
뒀다가 배고플 때 한 보시기씩 꺼내 먹는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백화점
슈퍼에 가서 김치를 비롯해 일주일 분 식품을 사서 자가용에 싣고 와서 질탕하게 먹고
마셔대는 그 느끼하고 메슥메슥한 식생활은 청산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욕
지기나는 포만감 그리고 넘쳐흐르는 풍요함은 어쩌면 잠시 없어도 좋을 것들이 아닐까.
날마다 눅거리 시장을 찾아다니며 싱싱한 야채와 고기를 사와서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싶다. 부침개를 부쳐 이웃과 나눠먹고 싶다. 잃어버린 입맛을 찾고 싶다. 아아 나는 오
늘도 조금은 배고프게 살고 싶다.
* 부침개를 먹고싶다
조정애
날 궂은 날이면
후라이팬에서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석유 곤로를 부엌문 밖에 덜렁 내다놓고
부추나 풋고추까지 숭숭 썰어 넣고 부침개를 지져대면
그 구수한 냄새는 동네방네 창호지 문틈으로 새들어간다
뜨끈할 때 두어 장씩 돌려 먹고 나면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얼굴에도
달처럼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단칸방에서 아이들이 셋씩이나 자라며 떠들썩해도
그런 정 때문에 주인은
시끄러운 소리를 잘 참아 내었고
부침개를 들고 이웃을 찾아가는 아이들도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일찍 터득했다
날 궂은 날이면
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서 부침개를 부치고 싶다
끼니가 되어도 요즘은 음식 냄새가 새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눅거리시장 찾아다니던 아줌마들도 보이지 않고
슈퍼마켓에서는 입맛이 마구 뒤틀려갔다
코를 킁킁거리며 가가호호 마실 돌며
무슨 반찬을 하는지 염탐(廉探)하던
철수 할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다
슬커장 된장찌개 얻어먹던 달동네도
지금은 근사한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다
날 궂은 날이면
눈물나도록 배가 고프고 싶다
부침개 몇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나서
그 구수한 맛 속에서 부자 같은 풍요를 느끼고 싶다
통통히 살이 오른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