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우리가족은 시어머니의 여든 두번째 생신을
지내기위해 부산 큰댁엘 모였다.
10년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어머님은 아주 자유롭게 건강하게
생활하시며 나름대로 별로 외로움을 느끼시지 않는것 같았다.
혼자서 곧잘 여행도 하시고 많은 연세에도 3시간이나
걸리는 우리집도 일년에 두세번은 꼭 다녀 가시곤 했다.
2년전에 허리를 다치시고 부터는 외출을 통 못하시고 지금은
이웃에 친구분들과 어울리는 정도이시다.
두달에 한번정도 어머님을 뵈려가는 편이지만 더 자주 가 뵙지
못한것에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다.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고 한동안 떠들썩하게 놀다 모두들
돌아가고 어머님과 우리 식구는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항상 어머님께 가는날은 당신과 함께 자게된다.
어머님은 따로자길 원하지만 난 일부러 어머님 곁에서 잠을잔다.
어머님은 귀찮다고 하시지만 속 마음은 좋아 하신다는걸 나는 안다.
잠들기전에 어머님은 항상 내손을 꼭 잡아보신다.
살며시 내손을 놓으신 어머님은 나를 부르시며 잠깐 일어나게 하시더니
장롱문을 열고 통장과 도장을 내앞에 놓으신다.
어머님은 펼쳐 보라 하시며 내게로 통장을 내미신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통장을 펼쳐봤다.
통장에는 200만원이 조금넘는 돈이 들어있는 만기된 적금통장 이었다.
"왜제게 이걸 보여주세요"
의아해서 묻는게게 어머님은 말씀하신다.
당신은 이제 연세도 먹을만큼 먹었고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다고
하시며 다른 손주들에겐 대학가고 결혼할때 할머니가 조금씩은 보탬을
주었지만 우리는 아직 자식이 어리고 대학갈 나이도 되지 못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당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리애들을
위해 3년동안 조금씩 적금을 들어 두었던게 이번달로 만기가 되었으니
찾던지 우리애들 몫으로 정해둔 것이니 내가 알아서 하라며 통장을
내게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할수 없다며 통장을 다시 어머님께 밀어드렸다.
그랫더니 어머님은 한사코 내손에 통장을 쥐어 주시며 잘 간직 했다가
요긴하게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옴을 느끼며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매달 푼푼이 모았을 것이다
당신도 여기저기 쓰일데가 많았을 터인데 그걸
도로 주시는 어머님 이제 연세가 드시니 점점 당신은 모든것에 자신이
없어시고 기운 떨어져 하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맑은 정신일때 그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난 얼마나 당신께 사랑을 드렸나 진심으로 자식된 도리를 다했던가
생각하니 너무나 모자람이 많았었다는 자책감에 더 당신께 죄스러웠다.
결혼초에는 막내인 남편에게 꼭 어린애를 대하듯 어리광을 부리는
남편을 또 그렇게 받아주시는 어머님이 난 못마땅 할때가 많았다.
맏이인 내 상식으로는 그런 모습이 영 비위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것으로 남편과 대립이 될때는 항상 어머님이 우리의
대립 중앙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자식을 낳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머님도 남편의 그런 태도도
이해가 갔다.
그럴때면 남편은 그랬다
나이드신 어머님이 좋아하고 기뻐할 일이라면 그 어떤일도
할수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이 주신 통장이 하나도 기뻐지가 않다.
어머님이 너무나 나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며느리에게나 자식들에게 당당한 당신의 모습 이었으면 좋겠다.
점점 힘이 없으시고 잘보이지도 않고 허리마저 온전하지 못하신 어머님이
가슴 아프다.
항상 어머님이 내손을 잡았지만 그날 저녁은 내가 어머님의 손을
꼭 잡아보았다.
조그맣고 탄력없는 당신의 살결이지만 아직까진 누구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체온이 전해오는 소중한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