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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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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어머니이십니다.


BY 안개 2001-05-08

내 어릴 적에

많은 시간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척박한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갓집은 풍요로웠다.

그 동네에서 두 집 밖에 없는 기와집의 외갓집은

장정 머슴 여럿이 있는 부농이었다.

외갓집 말고 다른 기왓집은

의료기관이 전무한 상태였던 시절

그 일대에 하나밖에 없는 약국이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눈이 시릴정도의 푸른 하늘에

명주 솜같은 뭉개구름 양털 새털 구름이 노닐었다

새와 짐승 나무 꽃 풀 흙....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다


오빠와 나 여동생 우리는

열차에 실려 외갓집에 가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역전에는 의례 외삼춘이 마중 나오셨는데

열차 시간과 하루에 두번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어긋날때는

단단하고 건장한 그러나 표정없는 머슴 서너명이

꼭 따라 나와서 우릴 업고 갔다.

역에서 외갓집까지의 거리는 십리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나오곤 했다.



크고 묵직한 갈색나무 대문 앞에 우릴 내려 놓으면

" 할머니~~~~~" 하며 대청으로 한참을 뛰어 갔다.

대문 옆에는 말아진 멍석이 가지런히 언쳐 있었고

마당에는 닭이며 병아리 거위들이 한가하게 오수를 즐겼다.

돼지 토끼 개 그리고 황소 여러마리...

낫 호미 키 써레 쟁기....연장 창고.

마당 한켠엔 그 마을에서 유일한 펌프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물이

여름에는 손이 시릴만큼 차거운 물이 나왔다.



아침이면 볏집단 곳곳에 닭알을 찾아 다니고

대낮이면 산밭의 대나무 숲에서 귀신소리를 내며 놀았다

저녁이면 교회 뾰쪽탑에서 종소리가 울리곤 했는데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며 서울 집생각을 하였다.


앞뜰의 마당을 가로지른 긴 전선 빨래줄.

가운데에 굵고 긴 대나무가 중간을 버텨 주었다

할머니께서는 햇볕을 아까워 하신 모양이디.

이불 호청이며 빨래가 늘상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뒤곁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었다

숲 귀퉁이에 반공호가 하나 있었는데 6.25 때 사용하였던 것이라고 하였다.

그 곳도 예외 없이 인민군이 들어와서

할머니 댁을 인민군 본부로 쓰겠다고 비어 달라고 하였다한다

할머니께서는 집 대신 식량 공급을 조건으로 하여

다행히 뺏기지는 않으셨다고 하셨다.

휴전 후

빨갱이들에게 협조한 사람들을 색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할머니께서는 동네사람들을 위시하여 집안의 하인에게도

무한한 인덕을 베풀어 무사히 넘기셨다고 하셨다.



뒷곁의 감나무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감이 열리면 긴 장대로 삼춘이 감을 따주시곤 했는데

어쩌다 비라도 퍼 붓는 날은

풀잎사이에 일그러진 감들이 널브라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터진 감은 아예 줍질 않았다.


당시 소도시로 고등학교를 유학중인 작은 삼춘은

아랫마을 냇가로 미꾸라지며 붕어를 잡어 주겠다고

어망을 어깨에 메고 큰 소리 치었으나

피레미 몇마리 잡는게 고작이었다

뒷동산에서의 내려오는 산토끼 잡아 주겠다며

우리에게 토끼를 산 위로 몰으라고 하였으나

뛰어만 다녔지, 한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하였다.


외갓집의 논은 저수지 바로 아래의 금싸라기 노른자 땅이었다

논이 거북이 등처럼 쩌억적 갈라지는 가뭄 황토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을 이면 많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넉넉한 흙에서 곱게 자란 나의 어머니.


젊은 시절 일본이나 만주에 떠도셨던 아버지를 만나

옹색한 살림을 꾸리셨으나

멋을 아시고 안달 떨지 않으시는 나의 어머니께서는

따뜻한 마음과 빼어난 맵씨 솜씨로 모두를 놀래키셨다.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열며

내 기도 내용은 "너희들이 전부이다" 하시는 어머니

땅이 어머니의 고향이듯이

저의 고향은 어머니 이십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요."


-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