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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심란할 때는 땀을 흘리자..


BY 산아 2002-06-27


여름이 성큼 들어와 버린 시점에서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심란하다

심란한 마음의 이유를 굳이 찾고 싶지 않아
사실은 생각에 생각을 하기 싫어
그냥 모든 것을 정지한 상태로 요즘은 내버려 둔다

이런 기분이 들때는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할 때라는 것을 안다

이틀간의 교육 출장후 하루의 휴가가 주어져서
큰애에게는 열쇠를 주어 학교에 보내고 나서
둘째와 함께 허드렛 옷을 챙겨가지고 어제는 
시골에 있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요즘의 시골의 들과 산은 정말 지기들끼리 계절의 옷을 입기에 바쁘다
뿌리내린 모가 한참 자라기 시작한 논도 생기가 있어 보기가 좋고
초록으로만 내달리는 산색깔도 은연중에 
이유없이 삶에 지쳐버린 나에게 힘을 실어 준다

오전 10시의 친정집은 닭들이 주인이 되어
모이를 쪼으며 한가롭게 놀고 있다.

집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화단에는 
키가 큰 접시꽃과 뒤 늦게 핀 장미가 환하게 우리를 반겨준다.
화단 주위에는 벌써 봉숭아꽃이 활짝 피어 있어
아직까지 굳어있던 내마음을 조금씩 녹여 준다.

난 친정집에서 허드렛옷으로 갈아입고 
두돌도 안된 둘째의 옷과 간식을 챙겨가지고 친정부모님이 일하시는 
마을언덕너머의 잎담배밭으로 향했다.

시집간 딸이 갑자기 오면 걱정하실 것 같아 
어제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독한 담배밭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만 보이는 
친정부모님이 반갑게 우리 모자를 맞아 준다

우리 다섯 형제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적에는 날마다 
돈 달라고 손을 내미는 우리들 때문에 목돈이 되는 
담배농사를 참 많이도 짓으셨는데....

이제는 올해 졸업하고 직장잡은 막내 남동생만
출가하지 않아 제발 담배농사좀 하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요즘 시골에서 돈이 될만한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봄에 또 담배모종을 심으시더니
이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고생을 하신다.

...... 친정엄마 ........
친정어머님 밤마다 한쪽 손이 잘 저려서 
지난 겨울에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손가락을 이용하는 일을 자제 했으면 
좋겠다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어도
올해 또 아버지를 설득하여 잎담배를 심으셨던 엄마
자식 낳아 가르치고 다 출가 시켰으면 되었지
아직도 자식에게 무언가를 더 주고 싶은지 끊임없이
일을 하시는 엄마.
멋을 낼줄도 모르고 사치도 모르고
가난한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지금까지
온갖 고생만 하시는 엄마
친정동네에서도 우리집은 친정엄마 때문에 집안이
폈다고 하실정도로 삶을 열심히 사시는 엄마

하지만 난 안다
우리 친정엄마가 책을 좋아하고 
천으로 만들기를 좋아하시는 것을...
나 어릴적에 엄마는 시간이 나면 항상 
신문이나 책을 읽으셨고 우리옷을 전부 만들어 주셨을 만큼
재봉틀을 익숙하게 다루셨다................

 ---난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밭자락가의 소나무그늘에 
미리가져간 돗자리를 깔고 둘째아들에게 막대기를 하나 쥐어주며
흙을 파는 재미와 그리고 개미를 관찰하는
재미를 알려주었더니 둘째아들은 하루종일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며
풀을 뜯어 나에게 물어보고 개미와 잠자리,거미등을 보고 신기해하며 
또한 막대기로 산자락의 부스스한 흙을 파보며 재미있어 한다.

난 흙바닥에 빈 비닐포대를 깔고 앉아 노끈줄에 
일일이 담배잎사귀 하나 하나를 엮어나갔다
어릴적에 해본 솜씨가 있어 일은 금방 손에 익숙해졌다

오후 5시까지 친정엄마는 밭고랑사이에 잎담배를 따서 중간 중간 묶어 놓으시고
아버지는 나에게 담배잎 묶음을 가져다 놓으시고
난 손으로 담배를 엮어 놓았다.

여름해는 길기만 하여 아직도
우리 머리위에서 내리쬐고 있었지만
난 하루종일 흙에서 뒹구었던 아이를 목욕시키고 
나도 손에 꺼멓게 낀 담배찐을 씻고
얼굴도 대충씻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육체적인 노동을 하여 
손가락 하나하나부터 온몸이 아프지만 머리속은 
개운하고 상쾌하다

당신들의 숙명인냥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시는 친정부모님을 보면서 
난 많은 것을 느낀다

올해는 과수원의 배나무에 착화 상태가 좋지않아
열매도 별로 없는 나무에 봄한철을 다 쏟은 아버지의 정성을 보고는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배웠고

햇빛 내리쫴는 한낮에 온몸에 독한 담배찐을 묻히면서도 
부부끼리 험한 말씀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엄마는 아버지 좋아하시는 호박돼지고기국을 끊여 주시고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시원한 음료수와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다 주시는 모습을 보고 
부부란 저렇게 사는 것이구나 하고 느낀다.

아무생각없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일을 하고 난후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머리속은 많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가끔은 정신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땀을 흘리는 육체적인 노동이 보약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