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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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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내음


BY 이선화 2000-08-23


내가 아는 한 언니가 내게 들려준 말인데
오래전 언니 남자친구가 햇볕에 말린 이불에선
햇빛내음이 난다고 그랬단다

그말을 듣는 순간 그 알지못할 언니의 남자친구
그것도 지금은 언니 기억속에서 까마득히
멀어진 그 친구와 언니의
이야기를 난 자꾸만 내 멋대로 꾸미고 만들어
상상을 나래를 펴며 혼자 즐거워했다

그러고 있으려니 더욱 궁금하여 꼬치꼬치
묻는 내게 언닌 이십년도 전의 일이라 생각도
나지않는다며 웃었지만
남자친구의 그 한마디만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걸보면 사람의 입에서 나온말이란 이래서
무서운건보다 하고 새삼 깨닫게된다

참말 모를일이다
그 향그로운 말 한마디에 이렇듯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마저도 가슴이 싸해지는데 지금은 먼 기억속의
사람이 돼버린 그 남자친구를
기억하는 언니의 표정은 그리도 무덤덤해질수
있다니....

어쩌면 인생은 바로 그런것인지도 ....

누군가를 맘속에 담은채 생각에 또 생각을 하다보면
아픔도 슬픔도 그리움도 어느날엔가는
아주 무딘 가슴으로 그때를 추억하게 되니
그것은 아마도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자 한편
우리네 사람을 한없이 어리석게 본 처사이기도 하리라

하긴 그런 어리석음 없이 어찌 세상을 배겨나리오
이 험하고 모진 세상을...

내게도 그런 서늘한 미소 한자락으로 되짚어볼
추억이 있었던가?

. ..........

예전 철없었을 적 그때는 내삶이 한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기를 바랬었는데

지금의 나는 사랑도 인생도 그저 뭉툭한 크레파스로
쉽게쉽게 그리는 아이의 도화지속 그림처럼
단순하고 평화롭기를 원할 뿐이다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가?
오늘은 따가운 햇살도 그리 밉지가 않다
오늘은 나도
베란다에 걸쳐놓은 이불을 톡톡 털어 걷어 들이며
이렇게 말해봐야지

"음......이불에서 햇빛 내음이 나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