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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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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야기 [수지클럽]


BY Suzy 2001-04-29

I love Suzy's club!
교실로 들어서자 과장된 듯 커다란 글씨가 칠판에 써 있다.

오늘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스터디 클럽의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기념촬영을 했다.
재워니의 디지털 카메라는 참 좋다, *^^* 어디든 바로 이 메일로 전송된다.

내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학원에서는 "Free Club" 이라는 별도의 반을 운영한다.
말 그대로 학생들에게 무료로 한시간의 수업을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이다.

우리는 이 시간을 "Lunch Club"이라고도 부른다, 점심시간쯤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이 학원에 등록한 학생이면 참석할 수 있다.

나는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이 학원을 이 특별한 제도 때문에 마다 않고 선택했다.
수업시간을 잘 조정하면 연달아 두 시간을 수업할 수 있으면서도 한 시간 수업료만 내면 되니까 나처럼 계산하는 많은 학생들이 선호한다.

시간이 잘 안 맞을 때는 휴게실에서 신문을 읽으며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리기도 한다.

수업내용도 다달이 바뀌는 외국인 선생님 따라 달라진다.
허지만 대부분 그날 그날의 英字신문에서 어느 기사를 주제로 선택해 읽고 토론한다.
자연히 시사에 밝아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 넓어짐과 동시에 예리해진다.
레벨의 차이 없이 여러 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 대화가 다채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달엔 의외로 런치클럽이 없단다, 학생들에게는 예고도 없이.....
모두들 서운해하고 갈팡질팡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시간 수업하고자 한 나절을 그냥저냥 소모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삐쭉 한시간하고 끝내기에는 미련이 남았다, 혀도 안 풀렸는데.....

궁여지책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 반 학생들 셋이서 스터디그룹 을 만들기로 했다.
적은 인원으로 잘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냥 돌아서기에는 모두들 너무 서운했기 때문이다.

교실을 나서며 우리는 교재에 대한 의논을 했다, "누가 먼저 준비하지.....?"
그 순간, 복도에 서있던 서 너 명의 다른 반 남학생들이 바짝 다가오며 묻는다,
"무슨 얘기인데요?" 전에 몇 번인가 런치클럽에서 토론을 함께 했던 학생들이다.

"스터디 클럽 할 사람 요기요기 붙어라~~" 나는 그 자리에서 검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저요~ 저요~~"주변에서 모두들 와르르 몰려와 어느덧 내 손가락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뜻을 모아 시작한 우리들의 스터디 클럽은 빈 교실 하나를 얻었다.
학원 측에서도 말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데 있어서야!

인터넷에서 찾은 CNN 기사로 내가 먼저 시작한 클럽은 의외로 호응이 좋아 많을 때는 십 수명으로 인원이 불었다, 어느 때는 준비한 프린트 교재가 모자라기도 했다.
게다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음 주제를 서로 돌아가면서 착착 준비해 왔다.

주제도 다양했다, 팝송을 듣고 받아쓰기부터 (이 수업을 위해 그 무거운 오디오 기기를 들고 왔던 미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 우울증을 비롯한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문제, 우리에게 아직 자리잡지 못한 지적 재산권, 청소년 범죄, 환경과 인간의 지능지수의 상관관계...등등...등등.....

토론은 신중했으며 주제를 제출한 사람은 5분 정도의 프리젠테이션을 꼼꼼히 준비했다.

그들은 스스로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사회의 구석구석을 심도있게 관찰하며 조심스런 해법도 제시할 줄 안다.
세계적인 안목도 막연히 피상적이거나 편협하지 않으며 가끔씩은 놀랄만큼 뚜렷한 주관으로 우리나라의 생존전략을 피력하기도 했다.

우리의 젊은 세대를 누가 어떻다고 걱정했던가......?
나는 이 젊은이들을 그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진정 자랑스러웠다!

너무도 사랑스러워 새벽같이 일어나 따듯한 빵(우리 반 학생들이 "수지 베이커리"라고 명명했다)을 구워 들고 가기도 했다.

그들의 공부하고자하는 열의와 서로의 신뢰로 우리의 한 달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학생들은 이 반을 "수지 클럽"이라 불렀다.

그 중 두 명은 유학 길에 올랐고 남은 사람들은 내가 구워간 케?揚?놓고 교실에서 송별파티를 하기도 했다, 아, 참! 빵을 풀자 음료수를 사러 뛰어나가는 센스라니....서로의 몫을 스스로 알아서 맡았다.

나이로 치자면 아들딸 같지만 그들은 나를 여전히 "수지언니"로 부른다.
리더를 정하지는 않았어도 모두들 내 말에 잘 응해 주었고 어떻게 할지를 나에게 의논했다.
물론 몸무게 순서라면 과연 내가 으뜸이니 일리가 있기는 하다, 후후후...

외국인 선생님들과 학원 관리하는 분들이 우리클럽에 신경을 썼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가끔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묻는 뜻은... 아마도 '얼마나 가랴.....' 싶었을 테지!

그들에게 무언가 한국 젊은이들의 숨은 저력을 보여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도 한다면 한다!"
보아라! 스스로 뭉칠 수도 있고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눌 줄도 안다.

별로 큰 기대없이 시작한 작은 일이었지만 젊은 세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것 같아 누구에겐가 마구 자랑하고 싶은 건 내가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몇 그루의 나무가 병들었다고 숲을 태우랴!
숲에도 강건한 자생능력이 있을터이니 너무 조급히 서둘지 말자.

우리의 꿈나무들은 5000년 역사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튼튼하게 잘 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