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니가 18개월 아이에게 생굴을 먹여 장염에 걸리게 한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3

공산주의식 투표하기.


BY 雪里 2002-06-13


오늘 새벽녁까지
컴을 켜놓고 두런 거리더니,
오늘 정오에야 일어 났다며 작은 아들이 전화를 받는다.

"투표하러 갈거니까 내려와 있어."
"투표 하러 가기 싫은데요."
"부재자 투표 말고는 처음이잖아, 참정권을 그냥 버리니?"
"누가 누군지 알아야 찍죠?"
"가면서 가르쳐 줄께, 내려와서 차 빼놓고 기다려!"

스쿠터는 역시 여름이어야 훨씬 맛이 난다.
신호대기에서 기다리는 동안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긴소매를 걸쳐 입고
다리를 건너 달려와 보니 아랫층 입구에 차가 나와 있다.

아들이 운전하는 옆자리에서
이제야 겨우 투표 통지서 봉투를 뜯는다.

허멀겋고 잘생긴 남자들이 웃으며 나온다.

악수를 세번이나 했던 키작은 남자도 들어 있다.

모두다들 나를 위해 몸을 희생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다.
??은 정치는 이제 끝날거라고들 한다.
하나같이 좋은 약속만 하고 있으니
누가 되든지 이나라는 걱정이 없을거 같다.
이 쪽지로만 봐서는.

나도 낯선 얼굴들이 많은데 아들이야 어련하겠는가!
차례로 훑어 보며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을 기억하고는
운전하는 아들에게 이른다.

"시장은 000를 찍고 도지사는 000.
시의원은 000, 도의원은000 그리고 당은 000당을 찍어."

"차라리 안찍는게 낫겠어요,"
"왜? 국민의 권리인데 행사해야지. 엄마가 하라는대로 해."
"이건 완전히 공산주의 식이네요."
"그렇게라도 참가하는게 안하는 거 보단 나아."
투표장소를 보니 시골 초등학교 급식실이다.

창문을 열어제끼고 아들과 둘이서 달리는 시골길.
흩날리는 머리를 손으로 쓸어 잡고
애인이랑 드라이브라도 하는것처럼 눈을 지긋이 감아 본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밤곶이답게 코안으로 스미는건
온통 밤꽃 냄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올려 뵈는건 밤꽃이고,
아래를 보면 모내기를 마친 논들이 하루가 다르게
흙을 없애가며 커가고 있다.

약간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초등하교 운동장에 차를 세웠다.
모두들 오전에 끝내고 간건지,
관계되는 사람들만 덩그마니 앉아서
컬컬한 목소리로 잡담들을 하고 있다.

내가 앞서서 용지를 받고
아들이 뒤따르며 내가 하는대로 따라한다.
따로 딴방에 들어가 찍는데도
아들은 어미를 잘도 따라 찍는다.

나란히 차있는 곳 까지 걸으며
뭔가 우스운 母子는 서로를 보며 웃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경찰차 한대가
얼굴을 시이소오 옆으로 들이민 채 서 있고,
그 옆 등나무 아래,
경찰관 복장을 한 사람 둘이서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 있다.

따가운 햇살이 바람에 밀리는 오후의 운동장에는
달리기를 위해 박아놓은 빨간 끄나풀이
혼자서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있다.

아들하고,
똑같이 투표하고 오는날.

내일은 둔치공원으로 응원 갈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