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햇살이 무척이나 뜨거운 토요일 오후
모처럼 아이들 손잡고 '집으로'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 얼마만이던가 ...
영화를 본 것이 ... 그리고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본 것이...
유년의 기억속에 남겨진 한 페이지를 열어 보듯 그렇게 아련한 시골풍경속에 푹 빠져서
외할머니를 떠올리고,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버릇없이 구는 어린 소년의 철없는 행동에
작은 아이는 "저 애 때려주고 싶다..."라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큰 아이는 아까부터 계속 눈물을 찔끔거린다.
몇몇 아줌마들도 나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토요일 오후를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 손잡고 어딘가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저 즐거운지
나를 "딸딸이 엄마"라고 놀려대며 다정하게 팔짱을 낀다.
모든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면서 멈추었으면 하는 것들...
그리움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젖어드는 것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는
빼곡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볼 수 있게 해준다.
고소한 팝콘을 연신 입으로 나르며, 톡쏘는 콜라 한 모금 ...
그리고 옛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는 일은
토요일이 가져다 주는 여유로움을 덤으로 얹어서
나를 행복하게 했다.
뭔가 가슴따뜻함이 전해지는 대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것들을 일깨워 주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음이리.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그렇게 굽어진 허리와 깊게 패인 주름으로
알알이 삶의 흔적을 남기겠지 ...
너나 할 것 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일테니 ...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들은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 돌아오는 주말에는 맛있는 수박을 사고, 고기 몇근 사 들고서
할머니댁에 가자꾸나 ..."
"엄마도 할머니가 보고 싶구나 ..."
"너희들은 할머니가 계서서 참 좋겠다 ..."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잠시 백화점 구경을 나서다가
아이들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으로 예쁜 수저, 젖가락 세트 두벌을 마련한다.
수저가 없어서 그동안 밥 못먹고 산 것 아니면서도 기꺼이 그리하고 싶은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음에 ...
상큼한 청포도와, 산뜻한 레몬이 그려져 있는 예쁜 수저를 딸들에게 선물한다.
영화속의 할머니가 외손주에게 주시던 그 마음을 담아서 ...
지금쯤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내 아이들에게 그렇듯 무엇이든 주시고 싶어서 늘 안달하셨겠지 ...
곁에 안 계신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 어쩌면 그 영화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이 촉촉해져서 아이들의 손잡고 돌아오며 영화를 본 소감을 묻는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할머니가 너무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할머니께 좀더 잘 해드리자는 말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좀더 자주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내 아이들을 위하여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줄 아는
그런 엄마가 되어 보고프다.
내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잠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가끔은 나를 내려 놓을 줄 아는 여유를
엄마는 찾을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아침에도 밥상을 차리면서
나란히 놓아진 수저 두벌에 나의 눈길이 머문다.
내 어머니도 나를 그런 마음으로 키우셨을 테지 ...
이제는 내가 뭔가를 준비해 드릴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나에게는 더이상의 할일을 남겨 주시지 않는 것인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원망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