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던 2000년 미국의 대선의 승패는 아직까지 가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부시의 당선을 보도하였으나.. 고어가 재검표를 요구하면서 선거의 결과는 잠시 유보되었다고 한다..
오늘 조간에 이런 짤막한 기사가 났다..
"고어, 부시 女史 내조 경쟁도 접전"
6일 내조경쟁을 마감한 공화당 조지 W 부시의 부인 로라와 민주당 앨 고어의 부인 티퍼는 전 유세기간동안 남편을 그림자처럼 동행하며 다정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데 주력했는데 이것은 빌 클린튼의 스캔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을 감안한 그들의 전략이었다고 한다.
티퍼는 기자들이 다가설때마다 연신 고어의 허리를 감싸며 고어에게 입맞춤을 했으며 남편은 선거기간중에도 아들 앨버트의 축구경기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며 남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숙련된 사진작가인 그녀가 남편의 유세장에 모인 관중들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을 나도 여러번 티부이에서 본 적이 있다.
한편 부시는 로라를 두고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이었다는 찬사를 보냈을 뿐 아니라.. 로라는 남편이 훌륭한 할아버지가 될 것이지만 먼저 휼륭한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둘 다 현모양처의 이미지 구축에 힘썼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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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良父)의 순서대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면 아마도 나의 아빠는 그 거대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열두번도 더 되고도 남았을 것이며... 나의 남편인 병규는 평생 가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 부부셨던 우리 남매의 어린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누운 엄마를 대신해 새벽에 깨어 분유를 타고 먹였던 것이 아빠라고 한다...
엄마가 이른 새벽 학교로 출근하고나면.. 출근시간이 다소 늦은 아빠는 어린 나의 손에 당시 유행하던 과자인 "뽀빠이"를 한봉지 들려서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다..
고등학교 때, 등교길에 나서는 나를 위해 교복 상의와 블라우스를 정성스레 다려주던 것도 아빠였으며.. 구두를 광나게 매일 아침 닦아주던 것도 아빠였다..
아빠는 수시로 닥쳐오는 제사때마다 엄마를 위해서 전 부치기와 청소 등등의 많은 가사일을 분담하였다..
이런 허드렛일에서부터.. 바깥에 가서 하는 서류떼기와 장봐오기 등등의 바깥 허드렛일또한 성실하게 해 내었다..
아빠만 보고 자란 나는 게으르고 모든 일에 서투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미처 판단한 겨를이 없었다.
언제였던가 내가 남편에게 고구마를 쪄줬던 적이 있었다.. 결혼후 분가하고 처음 고구마를 쪄줬던 날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너만 먹어. 난 안 먹어두 돼.."
그러는 것이다..
"왜?"
그러자...
그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뜨거워서 그러는구나..까기 싫어서 그러지?"
그러자.. 그는 씨익 웃었다...
그 때는 딸 달이가 나기전이었고 아직은 신혼일때라...
"에잇, 봐?兀?. 내가 까줄게.. "
하며..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고구마를 까줬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젤루 게으른 인간과 결혼한 지도 어언 일년이 넘어간다..그리고 그의 얼굴만 보아도 눈물이 날정도로 넘쳐나던 사랑도 쪄낸지 하루가 지난 고구마마냥 식었다..
그에게 생선의 가시를 발라주는 것도...
말 안하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 가지 반찬만 집중적으로 먹는 그를 위해 일일이 이반찬 저반찬을 밥 위에 얹어주는 것도...
그에게 포도를 알알이 따서 입에다 넣어주고 껍질이랑 씨를 손바닥에 받아주는 것도 이제 힘에 부친다...
며칠전 엄마가 탐스럽게 익은 감홍시를 한 상자 가져왔다..
예전같으면 홍시를 반으로 쪼개서 남편의 입에다 넣어주고 껍질을 손에 받아내면서까지 먹였을터이지만.....
며칠째 나는 그 홍시를 혼자서 부지런히 먹어대고 있다... 옆에 남편을 두고도 나는 홍시를 가져와 혼자서 홀랑홀랑 벗겨먹는다...
사랑이 식는 것을 그가 알아주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가 좀 더 독립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먼 훗날...
나의 아빠처럼 良父의 반열에 들어 언젠가 정말로 훌륭한 아버지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첫번째 조건이 되는 날.. 미국의 부시가 했던 것처럼 지금의 아내를 택한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줄 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