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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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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돈 후무리기 (마지막편)...감사드립니다


BY 잔다르크 2002-06-07

분홍색 꽃이 점점이 그려진 벽지 틈에 
빼곡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어머니 방의 창을 열고 
벌렁 드러누워 본다.

이불과 옷을 넣어두는 하얀 벽장
낮은 문갑 위에 놓인 거울과 화장품, TV, 가습기, 전화
기역자로 틀어진 벽을 향해 얌전히 자리한 재봉틀과 온열치료기...

"엄마, 우리 공부할 적에 돈이 기러버(귀해서) 얼마나 고상을 했심니꺼?
요새도 지갑에 단 돈 만원짜리 한 장 없는 노인들이 많아예!

어무인 몸이사 고단하지만 
말만 하만 다 들어주는 아들있지, 
알아서 용돈 넉넉히 주지,
조카들 거두고 살림하느라 고상이야 되지만 
마음은 핀하잖아요."
 
"너들 공부할 적에 비하면 이 집 아~들이사 호강이제,
필요한 거 있시만 안 해 주는 기 없신께!
아~ 이미(동생댁)도 직접 살림해봐야 내 힘드는 줄을 알 거다."

"엄마, 지도 고래 생각했는데
아무리 살림살이가 힘들어도 
돈버는 사람 없으이 할 살림도 없더마요.

이 참에 바람이나 함 쏘이로 가입시다.
고향에도 가보고 
오빠, 우리집 이사갔는 데도 들리고..."

"올 봄에는 혼자 나가서 따로 살아볼라고 마음도 먹어봤다만 
양사방 아픈데 나서지, 
다른 데 가만 화장실가기 겁나지, 
마 이래 살다가 갈란다.

당장이라도 내 없시만 
아~들은 우예노? 
잠시도 몬 비운다."

"엄마는 가~들 뭐라카지(꾸중) 마이소.
동상도 벌써 사십 중반이구 
지 식솔 알아서 챙길 줄 아니께!"

"눈으로 보이 말을 안 할 도리가 있나?
당체 아~ 두 넘이 물고차기로 싸워 싸니...
휴, 금방 들은 거도 자꾸 이자뿌고 
세월을 몬 이기는구나!

너 외할매 이러저러 하다고 할 적에 
속으로 빌라다고(별스럽다고) 했더니 내가 그 짝이다.
요샌 돌아가신 울 어매가 다 생각난다..."

부시럭부시럭 문갑을 뒤적이시더니 
종이 꾸러미 하나를 꺼내신다.
하도 꼬깃꼬깃 접혀있어서 한참을 이리저리 푸신다.

"오십만원이다.
저 번에 니가 보낸 십만원하고 합쳤다.
쌀 팔아 묵어라!"

"진 됐심다, 
엄마 수술비 많이 나왔다캐서 
보탠다꼬 이십만원 찾아 왔어요.
내사 마 사는데로 이래 살만 되지만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한다캅디더!"

"이미(동생댁) 들오기 전에 얼른 집어 넣어라!
가꼬온 돈일랑 암 소리말고 도로 가져가고...
낸 일구열심 니 걱정 뿌이다.
다른 데 씨지말고 쌀 팔아서 꼭 웃목에 재 놓거라!"

사오 년 만에 겨우,
이 애물단지 얼굴 한 번 보여주고
노인네 쌈지돈만 후무린 결과가 되었다.
머뭇거리는 내 손길을 재치고 손수 여행가방을 꾸리신다.

아, 세상의 모든 시름과 초조가
뿌연 안개로 피워오르는가 싶더니
가물가물 사라져간다.

++++++++++++++++++

삐들구다...가위로 종이나 헝겊을 잘라 어질러 놓다
후무리다...남의 물건을 슬거머니 휘몰아서 제 것으로 가지다

사투리 읽느라 힘드셨지요? 
다른 어휘론 그 말의 맛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리, 먼산가랑비, 설리, 호수, 나나, 달아, ps님...그 외 에세이방 모든 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