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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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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야기


BY 임진희 2000-08-21

가을이면 의례히 생각나는일이 있다.어릴적 초등학교에 다닐때

우리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벼가 누렇게 익기 시작

하면 우리 어머니 손길도 바빠지시고 마당 가득 고추 널으시랴

깻단 터시랴 일군 아저씨들 샛밥 챙기랴 항상 분주함 속에서 부

산 하게 가을 을 맞으셨다.나는 학교에서 돌아올때 담장 근처부

터 구수한 청국장 냄새를 맡으며 대문으로 향하는 발길이 즐거움

에 빨라졌었다.앞마당과 뒷마당에는 감나무가 많아서 비가 내린

날 아침에는 눈을 뜨기가 무섭게 세살 위인 언니와 몇살 어린

조카는 떨어진 감을 서로 먼저 주으려고 달려 가기도 했다.단감

나무도 있어서 학교 갔다 돌아와 어느날은 그 나무에 올라가 노

래도 한곡 부르다 감도 하나 따서 그대로 우적우적 먹기도 했다

장독대 옆에는 앵두나무도 있었고 뒷마당 한쪽에는 딸기도 심어

놓아서 계절마다 심심치 않게 과일 맛을 보기도 했다.펌프물을

올려서 목욕을 하면 어찌 그리 시원하던지 어린 나이에도 펌프

질을 하며 빨래도 곧잘 했었다.동네 다른 집에는 우물물이 있었

는데 우리집은 펌프로 물을 길었엇다.여름 방학때 는 아직 익지

도 않은 파란 포도를 한웅큼 따서 신맛도 모르고 먹기도 했었다

가을이 익어가면 추수한 벼를 홀태로 ?는데 그때는 일군이 넓은

마당을 빙 둘러 이십명 정도의 동네분들이 나락을 ?기도 했다.

지금은 시골도 기계화 되어서 편하지만 그때만 해도 볏단을 적

당히 손에 잡고 홀태라는 곳에대고 ?어야만 했다.다 ?고난 볏

단을 쌓아놓으면 우리들의 술레잡기 장소가 되어주곤 했다.볏단

으로 나래를 엮어 지붕을 해 얹으면 비로소 가을 일이 마무리

되는것이다.동네집들이 전부 노란 새 지붕을 얹고 있으면 그렇

게 정답게 느껴졌는데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짚을 이은 지붕은

점점 없어지고 슬레이트 지붕과 기와집으로 바뀌고 말았다.근대

화도 좋지만 웬지 시골의 정겨운 모습이 없어진것 같았다.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 어머니는 찹쌀에 콩을 넣고 떡을 해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김장 준비 하시려고 말려놓은 고추를

하얀 행주로 하나하나 일일이 닦으셨던 어머니의 손은 겨울이 되

어야 한가해 지셨다.추운 겨울날 학교갔다 돌아오면 손 시립겠다

고 얼른 두손을 가슴에 넣어주셨는데 나는 우리 아들 키울때 한

번도 그렇게 해 보지 못했었다.가을이 깊어져 날씨가 싸늘해 지

면 화로불을 준비해서 밤도 구워주시고 옛날 이야기도 해 주셨는

데 몇번이나 들었지만 항상 처음 듣는것 처럼 재미 있었다.나는

어릴적부터 봄보다 가을이 좋았다.길가에 핀코스모스도 좋아 하

고 마당가에 핀 국화꽃도 좋았다.국화 꽃 잎을 말려서 베게속을

해 주신적도 있었다.메밀 껍질로 만든 베개가 많았었는데 왜 그

랬는지 꽃잎을 말린 베개가 있었다.해마다 한것은 아니고 아마도

우리 어머니가 한번 만들어 보고 싶으셨던것 같았다.내 기억 속

의 가을은 쓸쓸함 보다도 따뜻함으로 남아있다.청국장 냄새를 맡

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발길이 즐거웠던 것처럼 내 유년의 가을은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