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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이야기 -7.(우리 엄마)


BY hl1lth 2001-04-26

7.-우리 엄마.

이제 칠십 줄에 들어서신 우리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눈에 콩깍지가 씌워
늘 아버지를 사모하심이 눈에 보였던 순정의 여자였다.
한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었고,
아버지에게 있음직한 불만을 내뱉어
우리를 불안하게 한 적도 없으셨다.
늘 그 사랑이 식지 않아서 우리 남매들은 주책이라며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싫지 않았고,
내심 두 분의 사랑 때문에 가슴 뿌듯함을 느끼곤 했었다.
늘 어린아이 같이 천진난만한 순수함을 잃지 않고 지내시는
엄마는 자식으로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는
모르지만 너무 사랑스러운 분이시다.
늘 자신을 대우하지 않음에 속상해 하시기보다는
늘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사랑을 나누려 애쓰는 모습으로
사셨기에 남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일도 없었고
천성이 너무도 착해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늘 소리없이 자신의 몫을 다 하시며
손해보기를 밥 먹듯 하고, 자기 자리도 ?지 못하는 듯 사시는 엄마를
나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았고 철없던 시절에는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언제나 양보만 하시고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챙기는 일이 없어
늘 옆에서 보기에 안타깝고 화가 난 적도 많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엄마의 삶이 봄날 파스텔화처럼 청초한
삶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멋을 부릴 줄도 몰랐고, 세련되지 않은 엄마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이라서 남을 속일 줄도 몰랐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일도 없으셨다.
아마도 칠십 여년을 사시면서 단 한 명의 적도 만들지 않고
살아낸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분은 우리 엄마일 것이다.
내 나이 스물 넷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던 우리 엄마는 안타깝게도 식구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사경을 헤메셨었고
안타까워 울음 우는 식구들에게
"엄마는 절대 돌아가시지 않으시니 방정맞게 울지 말라"며
나는 소리를 질렀었다. 그건 혹시라도 엄마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내지르는 나의 절규 같은 것이었다.
중환실에 누워 계셨을 적엔 엄마의 기저귀 가는 일이며
좌욕 시키는 일까지 모두 나의 손을 거쳤고,
밤낮을 엄마의 곁에 매달려 있는 나의 독함에
간호원들도, 엄마의 간병은 주사를 놓는 일 외에는
모두 다 나에게 맡겼었다.
집안 식구 중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엄마는
손가락을 내밀며 이게 뭐냐고 물으면 새우젖! 이라고 답해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지만 신의 도움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모두 정상으로 되어
집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의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무의식중의
엄마의 책임감과 사랑이, 엄마의 생명 줄을 놓치지 않고
꼭 잡고 버티게 했을 힘이 되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결혼을 했지만 친정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 집과 여동생 집,
엄마와 큰 동생과 올케, 그리고 아직 장가 안간 우리
막내가 함께 사는 친정은 모두들 걸어서 10분이면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기에 우리는 자주들 뭉치곤 하는데
하루는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목욕 가자!" 아직도 목욕 가서 사십이 넘은 나의 등을 밀어주고 싶어하시는
엄마를 따라 목욕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 나는
어디로 외출하고 없는 동생을 빼놓고
엄마와 팔짱을 끼고 동네 목욕탕으로 향했다.
탕 안에서 때를 불리고 나오신 엄마의 손부터 잡고 때를 밀기
시작한 나는, 엄마의 풀기 없이 주름진 얼굴과 목과 다리와 등을
밀고 나서, 엄마의 임신7개월 같이 나온 배를 손으로 툭 툭쳤다.
"엄마! 다이어트 좀 해야 겠다. 엄마! 배 좀 내밀어 봐요"
"지난번에 니 동생하고 왔을 땐 저기다가 눕혀 놓고 밀어주던데?"
누워서 때를 밀을 수 있도록 한쪽켠에 마련된 곳을 가르키며 엄마가 말씀하신다.
아! 죄송해라. 나보다 동생이 낫네. 내심 동생을 기특하다 여기며
"노인분들 때밀어 드릴 수 있게 주인양반 신경쓰셨구나. ?I챦겠다 정말, 그럼 그위로 올라가세요."
자리 잡고 올라가 누우신 엄마를
이리저리 굴리고 돌리고 하며 때를 다 밀고 난 나는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야! 저~기" 하며 엄마가 손으로 가르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팔이 불편하신 엄마의 년 배쯤 되어 보이는 동네 아주머니가
혼자 때를 밀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고
손으로 그 곳을 가르킨 엄마의 마음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나는 때 수건을 들고 그 분께 다가가
엄마의 오케이 싸인이 날 때까지 때를 밀어 드렸다.
자리로 돌아가 한숨 돌리는 내 등을, 때 수건으로 밀어 주시며
"야! 너도 다이?가 좀 해야겠다! "
"아~ 임자가 ?I챦데는데 엄마는?"
"아, 때밀기에 등판이 너무 커졌어! 내등짝하고 니등짝하고 절반차이야.
내가 얼마나 손핸데. . ."
"아, 참. 우리 엄마 맞어요?"
목욕을 마치고 엄마와 다시 팔짱을 끼고 어슬렁거리며 집으로 오려는데
엄마가 내 손을 꼭 쥐며
"야! 너 힘들었지? 엄마가 냉면 사줄께."
"?I챦아~"
"아, 내가 먹구 싶어서 그래. 가자!"
엄마의 손에 이끌려 쌈지 돈을 풀러 사주시는
냉면 한 그릇을 먹고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남을 챙기는덴 선수급인 엄마의 마음 씀씀이에
새삼 고개를 숙이면서도 목욕탕에서 엄마의 때를 밀며
느꼈던 야위고 늙어 가는 엄마의 모습 때문에 내내
가슴이 아팠다.
"엄마! 엄마는 오래 오래 사셔야 돼요. 정말로. . ."
육년전 69세의 연세로 너무나도 일찍 세상을 등지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깊이 후회와 회한이 밀려와서 너무도 가슴아픈 난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 계셨더라면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좋은 시간을 많이 가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가득차서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엄마! 내일 낮에 놀러 오세요. 수제비 해 드릴께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조금 더 어린 시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이제서야
겨우 그 마음의 한 자락을 알 것 같은 이 늦은 깨달음을
서러워하면서 나는 호사스러운 효도는 아니더라도 늘 즐겁게 해 드릴수 있는 나이기를 바라면서
텔레비젼 연속극 드라마 노하우 수십년에 사는법이
더욱 세련되어 지신 우리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