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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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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술상


BY 베티 2000-11-07




★ 남편의 술상 ★

얼마전 남편의 일터가 바뀌었다.

그 이후 남편과 마주하고 저녁식사를 했던 날이

하루라도 있었던가.

주말을 제외하고는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 있으니 그건

남편의 술상이 집안으로 옮겨져 왔다는 것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술을 마셔야 할 일이 많아서 그냥 귀가하는 날이

드물었기 때문에 나의 원성은 높아만 갔었다.


그러나 두 달이 가까워져오는 지금까지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

들었고 대신 집에서 한 잔씩 하고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지만 폭음은 하지 않는다.

또한 남의 흉허물을 입에 올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말수도 적은 편이어서 주로 듣는 편이지만 집안의

술상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한 모금 한 모금 음미 하듯 마시며 그 날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풀어 놓는다.

누구를 어디서 만나서 무엇을 먹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다던가,

어떤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등을

의논 하기도 한다.

어쩌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그냥 잠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날이면 서운함이 앞설 정도로

남편의 술상은 이제 하나의 기다림이 되었나 보다.


유교 사상이 아직 남아 있는 일부에서는 남자가

바깥일을 집에 들어와 시시콜콜 이야기 하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여자가 집에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일일이 말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 데 그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부인은 남편이 밖에서 일하는 모습을 훤히 눈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남편도, 부인이

집에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한다.


며칠 전 뉴스에, 우울증에 걸린 한 주부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이제 그리 놀라워 할 만큼 드문 사건도

아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주부가

생각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주부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부부간의 대화 단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화가 없는 울타리에서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

치다가 결국은 그 상황까지 가게 되지 않나 싶다.

인간은 혼자서 살기가 불안하고 외롭기 때문에

짝을 지어 살게 되지 않았을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 받고 평생

생의 반려자로 살아가면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지 못 할 경우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나 생각 한다.


대화라는 말이 나오니 남편과 일본에 머물고 있었을 때

의 일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들었건만 잠은 오지 않고 정신

은 더 맑아져 왔다.

그러기는 남편도 매 한가지여서 둘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어서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달빛도 그리 밝지 않은 으쓱한 밤에 서로 손을 잡고

강 위의 다리를 건너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 당시 우리 나라는 12시

이전에 영업을 끝내게 되어 있어서 그 곳처럼

밤새 영업하는 곳이 없었고 일본도 그런 곳이

흔치는 않았다. 자리를 잡은 우리는 가지고 간

편지지와 펜을 꺼내 놓고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 했다.

바로 코 앞에 두고 편지를 써 본 일은 그때가

첨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혼 때이므로

아마 사랑이 가득 담긴 내용으로 채웠으리.

그 곳에서 시간을 한참을 보낸 우리는 새벽이

되어서 나왔고 그 다음엔 버스를 타고 어느

호수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사람도

별로 없었고 초겨울인지라 공기도 좀 쌀쌀했지만

연못에서 아침을 맞는 우리의 마음만은 무척 훈훈했다.

편지가 좋은 촉매제 역할을 한 때문일 것이다.

대화의 한 방법으로 편지를 이용하면 큰 효과를

얻을 것이다

가끔 편지를 써서 남편의 주머니에 넣어 봐야 겠다.


나는 오늘도 남편의 귀가를 기다린다.

아니 남편의 술상을 기다린다.

결코 화려한 술상이 아닌, 냉장실에서 꺼낸

오이를 싹둑 썰어서 고추장 한 종지 곁들여

내 놓든지, 말린 오징어나 땅콩에 맥주 한 잔으로

이야기꽃 한 상 가득 피워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