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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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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심는 날


BY dansaem 2002-05-29

어제는 모내기를 했다.
모판에 볍씨를 뿌려서 적당히 자란 모를 논에 내다 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렇지만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것이 말처럼 그리 쉽고 간단한 것은 아니니...

어쨋든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따라서 나도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의 품을 사거나 남의 기계를 빌려 일을 할 때는
새참이나 점심을 준비하는 게 나의 몫이다.

어제는 오후 새참만 준비했다.
메뉴는 비빔국수.
오이를 채썰고, 국수를 삶아 건져서 사리를 만들어 놓고
비빔장을 만들고, 김치와 물김치를 덜어서 담고
맥주도 두어병 넣고, 시원한 물도 한통 챙기고
수저와 컵을 넣고, 참외 몇개를 칼과 함께 넣고...
계란은 삶다가 늦는다고 관두라는 남편말에 불을 꺼 버렸다.
나중에 까 보니 흰자도 덜 익었다.

뭐 잊은 거 없나 다시 살핀다.
왠지 찜찜해서 남편에게 확인한다.

"다 됐나? 뭐 빠진 거 없나?"
"응, 됐어. 빨리 가."

아이 셋을 다 태우고 바구니를 싣고는
걸어서는 한참 걸리는 논으로 갔다.
어머님과 아주버님, 그리고 이앙기를 가지고 일 해주시는 분,
또 그 옆에 외따로 한 채 서있는 집의 내외분,
그리고 마침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 집 남매 아이들...

들에서 먹는 새참은 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다.
품을 산 사람만 계산에 넣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소리를 질러서 들리는 거리에 있는 사람,
그 자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다 모인다.
그래서 들밥은 항상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남아서 저녁에 식은 밥이나 퉁퉁 불은 국수를 먹더라도 말이다.

다들 모여들고 난 그릇들을 내 놓는다.
아뿔싸!!
이런 낭패가 있나?
결정적인 걸 빼 먹었다.
이런....

비빔그릇을 안 가져온 것이다.
에고~~~~~~~

점심 먹은 그릇을 대충 훔쳐서 먹는다.
어쩔 수 없지 뭐.
그거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꼭 한 가지씩 실수를 한다.
아직은 들밥을 내가는 게 익숙지 않다.
특히나 넉넉히 손 크게 해내는 것.

우리 집에선 항상 조금씩, 딱 맞게, 아니면 약간 모라자는 듯 하게 한다.
음식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처리하는 거야 거름더미에 버리거나 묻어버리면 간단하지만
아직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아프리카 같은 데서부터 가까이는 북한 동포들까지.
그리고 결식아동들...
이것은 나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남아서 버리게 되었을 때 남편에게서 듣는 잔소리,
아니 굵은 말씀은 정말 무섭다.
우리 집에서는 음식을 버리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리고 또 새참 시간을 맞추는 것이나
적절히 술을 준비하는 것 등도 서툴다.
그래서 미리 남편에게 물어 놓거나 어머님의 도움을 받는다.

어제도 그랬다.
그릇도 그렇고 메뉴 선택에서도 그랬다.
비빔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듯 했다.
한 분만 비빔국수가 좋다며 비벼드시고
다른 분들은 모두 식수를 부어서(다시물이 준비되지 않았으니)
물국수를 드시는 거다.
더운 데서 일하시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아니, 이 쪽 지방에서는 음식문화가 국물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예전에 아버님이 비빔냉면을 무척 못 마땅해 하시는 소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냉면을 앞에 두시고는
"그래, 냉면이 이래야 되제. 먼 뻘건 걸 무쳐서는 쯧!"
하시는 걸...

여러 사람 밥 해내는 일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오전 참, 점심, 오후 참을 하려면
잠시 쉴 틈도 없다.
돌아서면 또 하고, 돌아서면 또 하고...
그것도 애 봐 가면서, 보채기라도 하면 업고서
무더운 여름에 땀 뻘뻘 흘려가며 불 앞에서 지지고 볶고 끓이고 하다 보면
파김치가 되고 만다.

그래도 직접 나가서 들일 돕지 못하는 것이
어떤 때는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할 때도 있다.
남편은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그걸 바라지 않을까?
그렇지만 농사일은 너무 힘에 겹다.
평범한 하루 일과도 난 쉽지만은 않은데
도저히 그것까진 못 하겠다.
남편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남편은 며칠째 새벽에 일어났다.
그리고 8시나 8시 반쯤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나면 9시가 넘기 일쑤다.
며칠 째 계속된 강행군에 남편은 지금 골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