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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규정해 세금과 규제를 받게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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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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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


BY allbaro 2001-04-23

불시착

제다의 사막에서 보았던 그런 하늘이 아까부터 나를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말간 빛의
막무가내로 푸른 그 빛은 괜히 누군가, 굉장한 존재가 나를
개미처럼 내려다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대관령을
넘을 때, 20여년의 세월이 갑자기 거슬러 스쳐감을 느꼈습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잠깐씩만 생각해도 어지러운 것은
작은 기억의 편린까지도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 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연대기가 고스란히 시간속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에 돌아봄은 늘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동반
합니다. 나의 존재를 돌아 보는 새로운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
졌습니다.

해서 늘 모래를 발 밑에 묻히고 조개 껍질을 발견하고, 물새들과
함께 거닐고 그리고 파도가 전하려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꽤 오래도록 그렇게 걷고 나서는 늘 들르는 카페 Will에 갑니다.
넓은 창에 말없는 거미처럼 자리를 잡고 지난 이야기들이 걸려
들기를 바랍니다. 나는 기다리는 일에 조금씩 재미를 붙입니다.

커피가 맴돌기를 멈추고 한숨처럼 조그만 김을 공간에 뿜어
올리기를 멈추면 나는 아랫입술에 가볍게 대고 향을 끌어 올립니다.
밋밋한 커피, 조용한 일상, 그리고 수평선의 끝에 걸려 있는
작은 고갯배... 어디라도 이어질 것 같은 길고 긴 해변의 포도....
수채화 같은 하루가 바닷바람에 실려 산너머로 달려 갑니다.

그리움이 때론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넘나들고 꿈은 늘 길고
잔인 합니다. 나는 사랑을 두고 돌아 왔고, 나는 미련을 키워
놓은 채, 새로운 잠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저 끊어진 줄다리
같은 긴 시간이 한가로운 동네 어귀의 골목을 돌맹이를 툭툭 차듯이
서성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굉장히 많이 생각하게되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간은 늘 사람을 방랑자로 만들지만,
이번에 정차한 행성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여유가, 그리고 수레바퀴의
틈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윽고 손끝의 담배에게도 안녕을 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짧은
여행이 나를 위한 수고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빈 커피잔이
놓여진 공간을 돌아봅니다. 몇 개의 꽁초와 함께 입니다.
나는 나의 빈자리가 스스로 조금 쓸쓸합니다.

나를 꺼낸 그자리엔 잠시 바람이 머물고 그리고 또다른 사람이 앉아
커피향을 즐기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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