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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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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다 그런거야!


BY Suzy 2001-04-22

수선을 피우며 서둘러 나선 아침, 길 위에서 흰 국화로 덮인 장례 행렬을 만났다.

항상 무심히 지나다니던 길인데도 내 옆으로 마주 지나가는 검은 리본의 자동차 행렬을 보면서 새삼스레 낯선 거리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 안에 누워있는 사람도 한때는 나처럼 서두르며 세상을 질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떠나는 지금 몇 송이 흰 국화만이 그의 죽음을 알려줄 뿐 그와 함께 달리던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떠나도 여전히 봄은 오고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마치 영원히 달릴 것처럼......

"빵 빠~ㅇ~~~~" 넋을 놓고 서 있는 나에게 뒤차가 경적을 울린다,
푸른 등! 난 놀라 엑셀을 밟는다, 살아 있음으로.......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나는 병원에서 의식이 깨면서 멍하니 표정 없는 얼굴로 내 손을 쥐고 있는 넋빠진 남편을 보았다.

그는 이미 이성적으로 일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곁에 있는 내 친구를 불러 은행 도장과 통장 비밀 번호를 알려주었고 우리 아이들의 등록금 날짜를 기억시켰다.

큰애를 불러 철부지 동생들과 넋빠진 아빠를 부탁하고 보험통장과 함께 결혼반지가 포함된 패물함 비밀번호를 적어주었다.
내 생각에 어느 보험은 남은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싶었다.

그리고 없애서는 절대 안될 몇 가지의 목록을 적어 두라고 일렀다,
물론 그 속에는 친정 어머니의 쪽 머리를 자른 머리카락과 닳고닳은 은가락지도 포함되었다.

슬프다거나 아쉽다는 생각은 의외로 없었다, 당연한 것이 온 것일 뿐!
나는 그때 알았다, 모든것을 벗어던진 죽은자의 평화를.....

오직 온몸을 쑤시는 듯 모든 세포마다 밤낮으로 아우성치는 고통만이 원망스러웠다.
고통없는 죽음은 하늘이 내린 복이라 했던가?

삼일이 지나도록 검사만 하던 담당의사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머뭇거렸다.
난 누운 채로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난 괜찮아요'

그 의사는 차분히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내 마음을 읽은 듯 천천히 입을 떼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몇 가지 있어요, 이렇게 높은 열이 계속 내리지 않는 것, 체중이 계속 줄어드는 것, 그럼에도 어떤 검사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
그런데.......지금 그래요........"

그는 누워있는 내 손을 잡으며 잠시 무슨 생각을 하듯 흰 벽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결심한 듯 빠르게 말했다,
"만약....... 만약입니다!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으니......일단 집에 가서 주변정리를 해도 좋습니다, 그 다음, 큰 병원으로 소개 해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그때 내 체중은 4일만에 놀랍게도 11키로가 줄어 있었다.
"그래요? 집에 가면 너무 날씬해져서 동네 사람들이 날 알아보려나 몰라?"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그는 밤중이라도 열이 40도를 넘으면 연락하라고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뒷걸음으로 문을 닫고 나갔다.

집에 와서 돌아보니 내 인생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소유한 모든 것들은 너무도 하찮은 것들뿐이었다.

그 대신 누구누구에게 사랑했었다고 말할 것인가?
누구누구에게 고마웠다고 전할 것인가?
살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살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서 보고싶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아이들에게는 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무엇을 좋아했으며 어떤 음악을 자주 들었는지, 무얼 하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저희들을 사랑했는지......잊지 않게 적어놓고 싶었다.

부탁을 한다면 내 기일에는 음식 말고 자잘하고 향기 짙은 들국화에다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음 좋겠다고 해야지, 아, 참!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는 말을 잊을 뻔했어......
난 항상 끝없는 바다의 자유를 동경했거든, 거기는 벽이 없어서 좋더라......

다행히도 난 죽지 않았고 그 이후로 이렇게 내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삶에 대한 새로운 개안이랄까.....? 가치관의 변화는 너무나 당연했다.

요즈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소상히 기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떠난 어느 봄날, 내 딸이나 혹은 며느리가 내 글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 맞아, 맞아......이게 바로 갱년기로구나.........." 그러면서 안심하겠지,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인생은 이렇게 한 고비씩 열병을 앓으며 지나가는 것이야"
그리고 그들도 천천히 떠날 채비를 하겠지...........

그리고 나처럼 지나치는 죽은 자의 행렬에도 가슴 뭉클 하겠지.
"인생은 다 그런거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