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근무를 마치고 기숙사에들어와 눈을 부친지 한시간쯤 되ㅆ을까..올케에게 전화를 받고 바로 움직였는데도 모델하우스에 갔을땐 벌써 한낮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참을만했다.
얼마전 올케는 화성의 어느 아파트에 분양되어서 프레미엄이 몇백이 붙었다는고 자랑을 했었다. 이번여름에는 온식구가 비행기타고 피서를 간다는둥 요즘 사람 사는 집엔 김치냉장고가 있어야 한다는둥 내 심사를 건드렸고 결정적으로 사람이 너무 미련하게 살면 힘들다면서 월급으로만 사는 날 미련퉁이로 만들었었다. 결정적으로 여자가 대학원 공부를 하는것보다는 결혼전에 직장생활도 하고 사회경험도 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딸래미 공부시키느라 허리휘신 친정부모님까지 싸잡아 얼렁뚱땅 욕보였었다.
덕분에 맺힌 바가있어 아니꼽지만 웃는낯으로 근처에 다른 아파트 좋은거 분양하면 내게도 바로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놨던 차에 오늘 드디어 올것이 온것이다. 올케가 아파트 분양 그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말도 했지만 첫 싸움에 사기충천한 나는 겁날게 없었다. 까짓거 나도 할 수 있다구 이참에 나도 목돈좀 만지자구...
우선 회사앞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을 뗐다. 그리고 터미널에 갔더니 오산으로 가는 버스는 방금 출발을 했고 한시간 후에야 다음 차가 온다는 얘기에 난 과감하게 콜벤을 불렀다. 프레미엄 몇백이 왔다갔다 하는판에 까짓 편도 삼만원이 대수랴.... 운전사 아저씨는 서글서글 했고 내가 분양 신청서 넣을 곳에대해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여러가질 알려주셨다. 거기 아파트가 갑자기 많이 들어선다는 애기며 땅갑이 막 오르고 있다는 얘기까지...
집에들러 인감을 챙기고 은행에가서 신청금 백만원을 수표한장으로 만들고 모델하우스에 갔다. 위치는 그럭저럭 세대수는 이천세대가 넘는 큰 단지였고 모델하우스는 정말이지 기가막히게 멋졌다.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둘러 태안읍사무소로 갔다. 배고픈 것도 잊을만큼 신이 났다.
그러나....
태안읍사무소는 말그대로 전쟁터였다. 대기번호표는 더이상 마오지 못하게 막혀있었고 인감떼는곳은 아줌마 아저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기인수는 사백몇명이었고 신청이 밀려 12시 이후에 온사람들은 금일내로 발급이 안되니 돌아가라는 안내장이 번호표뽑는곳에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어찌어찌 좀 해볼까 하고 긴 줄끝에 서 봤지만 기다리던 사람중에 새치기 하는 사람이 다른 여러사람에게 큰소리로 봉변당하는 걸보고는 가슴이 조마조마 해졌다. 내 앞의 아이엄마는 세너살쯤 되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팔에는 백일도 안되보이는 아주 간난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는 보채고 엄마는 줄을 놓칠까봐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무작정 다시 모델하우스로 갔다. 우선 신청서만 접수하고 내일이나 모레 인감증명서를 내면 안되겠느냐고 사정을 해봤지만 아까 안내해주던 맘좋게 생긴 아저씨는 어느새 깐깐한 벽창호영감으로 변신해 있었고 절대 안되다는 대답뿐이었다.
문득 내 자신이 초라하게느껴졌다. 빽줄도 돈도 게다가 아무경험도 없다는걸 그 벽창호 영감은 다 알고 있는것처럼 날 바라보았다. 부끄러웠다. 맨발에 끌고간 싸구려 샌달도 그랬고 닳아서 헤진 청바지도 그랬고 손에 꼭 쥐고 있던 무전기만한 휴대폰도 그랬고 맨얼굴에 핸드백이어색해 들고나온 아이 수영복답는 비닐백도 그랬다. 전의상실이다.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분양신청도 못해보고 모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뒷통수에대고 늘씬한 도우미들이 말한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모델하우스를 되돌아 나오는데 한꺼번에 쏟아지는 햇볕은 왜그리도 눈부신지.
오늘밤 야간근무를 위해 한시간이라도 자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갑지기 맥이 다 풀려버려서 돌아오는 내내 기사아저씨가 여러번 말을 걸었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난 뭘하고 살았나. 다들 저렇게 열심인데...아쨌든 오늘 밤 근무인게 천만다행이다. 아까기분그대로 남편을 만났다면 성질나는대로 아무말이나 막 퍼부었던지 울어버렸던지 했을텐데.
그래 우리엄마말씀이 너미돈 먹는일은 쉬운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런말도 하셨다. 머리속에 들어있는 글도 배우는데 시상에 못배울게 무에냐고...
자극 받았다. 삼년뒤엔 난 꼭 수도권 아파트 시민이 되어있을꺼다. 그것도 꼭 분양받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