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다가오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11월 네번째 목요일) 휴가를
맞아, 무얼할까 궁리를 하고있던 어느날, 한 친구가 며칠 쉬는 동안
용돈이나 벌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우리보다 2년 가량 먼저 한국에서 이민 온 그 친구네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조그만 '슈퍼'를 하고 있었는데,
추수감사절이 대목을 보는 기간이라 일손이 딸린다 했다.
특별한 계획도 없었고, 게다가 돈이 생기는 일이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민 와 청소부와 재봉일을 열심히 하여 돈을 모으신 뒤
그 가게를 인수하셨다 했다.
고생을 많이 하신 탓인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시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가 시키는대로 일을 시작했다.
큰 상자를 뜯어, 총처럼 생긴 기계로 일일이 가격표를 붙여 쌓아놓기도
하고... 가끔 매장의 선반을 들러보고 빈 자리는 새 상품으로 채우고..
빈 상자는 차곡차곡 정리하여 폐지장사에게 넘길 준비도 하고...
난생 처음 해보는 '노동'이 힘은 들었으나, 시간 당 2불씩 받을 생각에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하루가 갔다.
다음날 오전에, 전날 했던 일들을 대강 끝내고, 오후 부터는
돈계산 끝낸 손님들의 물건을 큰 봉투에 담는 일을 배웠다.
무거운 것은 아래로... 깨질수 있는 것은 따로...
봉투가 너무 무겁지 않게...
'처음 하는 일인데 잘 하는구나!'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문득 한 손님이 가격을 잘못 찍었다며 내가 봉투에 넣고있던
통조림을 빼어들었다. 깡통에는 '$1.19' 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계산기의 종이 영수증에는 '$1.49' 라고 찍혀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당황해하시며 실수였다고... 사과하고 다시 계산을
하셨는데..... 그날 오후, 나는 몰랐어야할 사실을 알게되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교육수준이 낮은 남미 계통의 이민자였는데,
그 가게에서는 고의적(?)으로 부당한 가격을 받고 있었다.
좀 순진해 보이거나, 무식해 보이거나, 아니면 허름한 옷을 입은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서면, 계산기에는 영락없이 엉뚱한 가격이 찍히는 것이었다.
$1.19 가 $1.49 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2.48 이 $4.28 로 되기도 하고...
10명 중 9명은 별 말 없이 돈을 내고...
어쩌다 들여다 보는 손님이 있으면, 실수였다고 얼버무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이민자 끼리...
게다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것을 더...
더 이상 일을 할 맛이 안 났다.
그날 일을 끝내면서, 부모님 핑계를 대며,
더 이상 일을 못한다고하며 나오면서 느꼈던
부끄럽기도하고 분하기도한 감정을
나는 가게 뒤에 세워져 있던 친구의 멋진(?) 자동차 바퀴를
두, 세번 차는 것으로 다스려야만 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나의 비겁함을 부끄러워 하면서.....
그분들 지금도 좋은 동네에서 잘 살고 계신데,
그렇게 힘들여(?) 버신 돈을 잘 쓰고 계시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