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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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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때로는 울고싶다.


BY Suzy 2001-04-19

아들이 군에 간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 그 애의 방을 치우지 못하고 방문이 닫힌 채 그대로 두고 있다.

행여 눈물이 나면 어쩌나.....보고싶어지면 어쩌나....? 정말 그런 건 싫은데....
그 애가 떠나면서 내 마음까지 가져 갔는지 지금 이 집안은 텅 빈 채 아무도 없다.

아들이 집을 떠나던 날 아침 일찍 남편친구 부인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안부나 위로의 전화이다,
그녀의 섬세한 배려가 눈물겹지만 사실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그럴 때는 의례적인 말치레보다 그냥 가만두어주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아들 군대 가는 날 잠이 오더냐?"는 그녀의 질책에는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그녀는 눈이 퉁퉁 붓도록 며칠 전부터 울었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나를 위로하겠다는 것인지, 훌륭한 엄마의 본보기를 보이려는 것인지.....
도대체 애매 모호한 그녀의 전화는 한편 부담스럽기조차 했다.

나도 때로는 울고싶다!
세상에 자식 떼어놓고 가슴아프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더냐?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애가 떠난 오후에 길거리 양지쪽에서 봉오리 진 꽃을 이고 있는 작은 화분을 하나 사들고 들어왔다,
꽃이 핀들 내 아들만 하겠냐마는.....그래도 눈길이 허공을 더듬거나 그 애의 손때묻은 물건에 머물까봐 잘 보이는 앞 베란다 가운데에 놓았다.

세상을 이만큼 살아오면서 울고싶은 일이 왜 없었을까?
아이들만 나를 울리던가? 인생은 왜 그리 울 일이 많던가 말이다.
쉽지는 않았지만 난 그때마다 울지 않으려 이를 악 물었다.

불행했던 내 엄니가 돌아 가셨을 적에 울지 않았고, 내 어린 자식들이 열에 들떠 엄마를 찾을 때 일터로 나서면서 울지 않았으며, 내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지막 유언을 하며 울지 않았다.

어떤 이는 독하다 했고, 어떤 이는 무심하다 했으며, 누구는 인정머리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울 엄니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는 의식을 놓쳐가며 죽도록 몸살을 앓았고,
어린것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출근할 때는 너무 이를 꽉 다물어 어금니가 다 상했다.
철부지 삼 남매를 두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도 우는 대신 밤낮으로 잠을 안 자서 시력을 반쯤 잃었다.

천성적으로 눈물이 많은 나는 어려서는 남의 상여만 지나가도 펑펑 울었다.
"엄마 찾아 삼 만리"라는 만화책은 하도 울면서 읽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언제부터 울지 않으려고 했었지.....?
생각해보니 "엄마"가 되고 난 후부터 인 것 같다.
억지로 강해 보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아이들에게 슬픈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어릴 적 고생에 찌든 나의 어머니는 수시로 어린 내 앞에서 눈물지검을 했다.
그때마다 어린 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얼마나 신음했던가?
나는 행복이란 단어를 깨우치기 전에 슬픔이나 눈물이란 어휘에 익숙해지며 자라났다.

현실적으로 크게 호강시키는 것은 어려우나 최소한 내 눈물로 인하여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물을 참아내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울어 버릴까?-- 여러 번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가차없는 스스로의 단련으로 가능한 한 이성적이고자 노력했고 사소한 감정의 표출은 자제 했으며 신중하고 객관적이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내 아이들이 넓고 크게 보는 안목이 생길 수 있다면.....부모는 자식의 교과서라 하지 않던가?

울어서 된다면 울어도 좋다!
그러나 울어도 소용없는 일은 눈물로 포장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자!

혹자는 비인간적이라 했다, 감정이 메말랐다고도 했다.

허나 생각해 보라, 나도 심장이 뜨겁게 뛰는 "어머니"인 것이다.
어린 내 새끼가 넘어졌을 때는 쫓아가 일으켜주고 싶었고,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간 날은 도시락을 들고 쫓아가고 싶었고, 밤늦은 보충수업시간에는 학교 문 앞에 차를 대고 태워오고 싶기도 했다, 물론 비오는 날 우산 들고 마중 나가고도 싶었고 대신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난 그 애들을 두고 먼저 떠나야할 운명이니.....
그들 자신이 스스로 헤쳐나가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난 그들에게 연습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비오는 날 우산 갖다주는 이 없이도 혼자 빗속을 헤쳐 나와야하고 무거운 짐도 스스로 들어야 한다.
그 뿐이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어두운 밤과 허기진 날들을 극복해야하는가?

나를 닮아 잘 우는 둘째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울 일이 너무 많단다, 그때마다 눈물을 흘린다면 너는 아마 평생 울기만 할걸?"그 아이는 요즈음은 커서 그런지 힘들고 어려울 때도 별로 울지 않는다.

이제는 가끔 울기도 해야겠다, 그래야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세상이니.
그 누가 남의 가슴속까지 헤아려 줄 것인가?
그런 혜안을 가진 사람이 아직 있기는 있는 걸까?

남편이 전했다, "아무개 엄마는 아들 군에 보내고 그 애가 좋아하던 음식도 안 해 먹었대"
내가 말했다, " 그렇게 훌륭한 엄마한테 나를 비교하지마, 난 이런 엄마니까!"

그러나 울고불고 음식을 절제한다는 그녀는 알까?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을...

누가 옳고 현명한지는 서로 견줄 필요가 없다, 다만 색깔이 다를뿐!
나와 다르다고 틀린것은 아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더냐?

사랑은 보여주기 위해 펄럭이는 깃발이 아니다,
다만 가슴 밑바닥을 적시는 진한 감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