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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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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척 최면걸기..


BY 배꽃 2001-04-19

오늘 대형할인매장에서 85,000원을 3개월 할부로 카드로 계산했다.
예쁜 옷도 아니고,
멋진 구두도 아니고,
샤넬매장에서 만지작 거리던 향수도 아니고,
닭한마리, 주방세제, 알타리 두단, 생선.......
"나 계산할 동안 저쪽 입구에서 담을 박스 만들어 와"
1년째 백수인 남편을 잠시 비키게 해놓고 카드로 계산했다.
조금의 여분은 있지만 불안해진다.
고름이 살 될리 없건만 첨으로 반찬사고 카드란걸 써 봤다.

암말 없이 다 줏어담고 차에 싣고 운전하는 남편옆에선 본
거리는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길 양쪽 야트막한 배 과수원의 흐드러진 배꽃,
도로변 벗나무에서 떨어진 꽃잎들은 달리는 차위로 떨어지고
달걀사러 축산대학 찾아가는 길의 논밭들은 농사준비를 마치고
짙은 땅색깔을 풍기며 싱싱하게 북돋워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실직후 처음으로 남편이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머리 나빠 숫자계산 못하는 마누라, 복잡한 계산 예태 안해도 되게
해주고 살았던거구나...암만 머리나빠도 3개월 할부해서 어떻게
좀 부담을 줄이는 궁리를 계산대에서 해야되는 일을 나이 사십에
첨하게 해주었던거구나.
그런것도 고마운 일이었구나..
여태 성실하게 살아준 남편이 이제서야 고맙다니...

다니던 운동, 문화센터 강좌, 아줌마들과의 맛있는 점심...
모든걸 접고 남편과의 24시간이 시작되던 1년전,
죽을것 같았다.
그냥 모든게 싫고 밉기만 했다.
설사 평생 먹고살걱정이 없는 요행이 생긴다 하더라도
남편하고 하루종일 함께 있는 생활은 못할것같았다.
그러나 어떤 핑계로도 살아내야 하는 아내고, 엄마이기에
이젠 남편에 대한 내 맘도 편안해 지고 있다.
함께 목욕다니고, 함께 시장다니고, 뉴스나 연속극에 함께 흥분하는
백수 부부의 하루일과가
오늘은 나중 나중 자식들 떠나보내고 둘이 남았을때
다정하게 살수있을 희망처럼 느껴졌다.

더하기 빼기만 못하는 여잔줄 알았는데
남편이 언제까지라도 내곁을 지켜줄 소중한 안식처란걸
16년 만에 깨달은 바보...

그래, 그래,
금방 좋아질거야,
더이상 이 아름다운 계절을 눈물로 맞게 하진 않을거야.
난 행복하다, 행복하다.
아줌마들만 가득한 오전시간의 할인매장에서도
당당 하게 쇼핑카트 밀고 내뒤를 따라오는 백수남편을 둔나는
행복하다.
에궁, 그아줌니들 차에 싣기도 얼마나 무거울까.
난 백수남편있어서 여왕처럼 앉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