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햇살이 다사로워 진다 싶더니 금새 반팔을 꺼내입어야 할 만큼
무더웠던 하루였다.
아이들이 등교길에 오르고 집안 정리를 마치는대로 여름옷들을 꺼내보았다.
작년에 입었던 여름옷, 1년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그 옷이 맞을지, 작을지 가늠해 보고 작아진 옷들은 이웃집 꼬마에게 주기로 작정하며 차곡차곡 서랍을 정리하였다.
그리곤 오랫동안 겨울잠을 자고 나와 뒤숭숭한 얼굴로,
와, 이제 나의 계절이로군 하는 여름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리기
시작했다.
예열이 잘 된 다리미는 까딱 손을 잘못 대거나 하면 쉽게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또 집중하며 다려야 한다.
아주 어렸을 적, 다리미에 다리를 데인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여간 다림질에 조심을 기하는 것이 아니다.
향 싼 종이에선 향내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고 하였던가?
아이들이 입었던 옷에선 아이들의 상큼한 냄새가 나고, 내가 입었던 옷에선 빨래를 하였음에도 웬지 반찬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이 옷은 지난번 남대문 시장에서, 또 이 옷은 백화점세일때,
이 옷은 아이들 친구엄마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
옷마다에는 다양한 추억과 사연이 함께 서려있다.
그리고 그 옷과 동시에 떠오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다림질은 하는 동안 나는 또 그옷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공장에서 원단을 잘라 재봉하고 단추를 달고, 다림질을 하고, 포장을 하고, 운반을 하고, 혹은 옷감의 무늬를 생각해내고 옷의 디자인 때문에 고심했을 생산의 초기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노고까지.
아이들의 옷에는 색색의 물감이 묻어있거나 혹은 먹물이 몇 방울 남아있기도 하다. 그림을 스케치북에만 열심히 그리는 것은 아닌가 보다.
다림질을 하면서 나는 빳빳하게 풀 먹여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기까지 하던 교복의 카라가 생각났다.
마치 그 빳빳하고 하얀 정도가 자기의 고결한 인품을 드러내기라도 한다는 듯 열성을 다해 세탁을 하고 주머니에 풀을 넣어 바락바락 주무른 후, 다림질 할 때의 느낌이란!!
그런 느낌들은 이젠 그리움의 한 조각이 되었을 뿐이다.
한시간 정도 충분히 다림질을 하노라면 머리카락속에서부터 땀이 흐른다. 급하게 외출할 때 입을 옷 한벌 정도도 다시 손 보아두고, 남편의 와이셔츠 몇장과 아이들의 후줄그레했던 청바지에도 열을 가해준다.
다시 말끔하게 인상을 펴는 옷들은 이제서야 살만하다고 엄살을 부린다.
남아있는 열기로 식탁보와 손수건 몇장을 다린다.
다림질 하는 동안 내 옷을 늘상 다려주시던 친정엄마의 주름진 얼굴도 다시 생각하고, 모시한복 곱게 다리시던 시어머니도 생각한다.
내가 다린 옷을 입고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의 멋진 모습과 급우들 앞에서 씩씩하게 발표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생각한다.
식은 다리미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창문을 여니,
따슨 햇살이 친구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