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모자하면 알랑가 모를랑가 모르겠지만,
아무튼 떴다하면 모자를 눌러 쓰는 여자가 한명있어요.
긴 파마 머리에 챙이 둥그렇게 달린 모자만 쓰는데,
비리비리 깡 말라가지고, 키는 또 약간 큰편이여가지고,
거기가 항상 롱 치마를 입는편이여가지고, 모자까지구색을
맞춰가지고...
내가 알기론 계절마다 서너개는 족히 될듯한데,
그것도 모자라서 항상 모자파는 가게를 기웃거리는 것이
쬐끔 수상해 곁눈질을 치며 유심이 봤었어요.
혹 대머리가 훌러덩 까졌을까?
아니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는 소갈머리없는 여잔가?
또 아니면 게을러서 머리를 몇날 며칠을 안 감는 여잔가?
또 또 아니면 머리가 냉해서 그런가?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런 신체적인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고,
남들이 모자를 쓰면 잘 어울린대나 어쩐대나 그래서 쓰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나니 그런것도 같았어요.
마르고, 키가 크고, 롱치마 입는 걸 좋아하니 거기다가 구색을
맞춰서 쓰면 분위기가 살아서 덜 말라뵈고 좀 이뻐뵈는 장점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모자하면 그 여자. 그 여자하면 모자가 바로
연상 되는거였어요.
소문에 의하면 그 여자 때문에 이 마을 여자들이 생전 안쓰던
모자를 하나씩 둘씩 쓰기 시작해 일산 신도시로 유행이
번지더니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서울로 옮겨가 해남 땅끝마을
까지 너도 나도 모자를 쓰게 됐다는... 뭐 그런 뻥 친 얘기.
몇년전 그 여자에겐 소설같은 일이 벌어졌었답니다.
꿈에라도 봤으면 하던 첫사랑을 십삼년만에 만났답니다.
기차를 타고, 시집 한권을 들고,
내장사가 있는 정읍에서 첫사랑을 드디어 만났고,
달려가 가슴에 기대여 울고 싶었지만 태연한척 악수만 했답니다
그런데 첫사랑이 처음하던말이
"왜 그렇게 말랐어요."
그러더니 몰라보겠다며 모자를 벗어 보라고 하더랍니다.
하얀자켓에 맞추어 하얀 모자를 쓰고 갔었는데,
벗자니 머리가 푹 눌러져 있어 보기 싫은게 뻔한데,
쭈빗쭈빗 버티고 있었더니, 두번째 하는말이
"대머리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뭘 물어 봐요. 뻔하지...
두번다시 안만났답니다.
꿈에서라도 볼까봐 이젠 겁이난다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오늘 그 여잔 가을색에 맞춰 갈색모자를 쓰고
상수리나무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카페에 갔다 왔어요.
슬픈가요를 좋아하는 그 여자는
네모난 창가에 앉아 창밖만 하염없이 처다보았지요.
모자를 꼭 쓰고 발길에 툭툭 차이는 우울을 즐기며
호수공원의 밤길도 걸었어요.
모자하면 그 여자 그 여자하면 모자.
들꽃을 좋아하고,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일산에 그런 여자 하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