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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 아이들이 느끼는 아빠자리


BY 산아 2002-05-06


아이를 키우면서 - 아이들이 느끼는 아빠자리오늘도 아침5시 40분이 되어 가자 남편은 
큰애와 두돌도 되지 않는
둘째에게 모자를 씌우고 잠바를 입혀 아기등산용 베낭을 메고
운동복 차림으로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오늘도 새벽4시 30분에 일어난 둘째 때문에 잠을 설친 
난 아직도 잠옷차림으로 현관문을 잠그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가고.

봄이 오고 나서 시작된 우리집 아침풍경이다.

저녁엔 일찍자고 아침이면 6시도 되지 않아 스스로 일어난 두아이들.
저녁이면 애들 자는 시간에 들어온 아빠.
그래서 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질수 없어
우리 부부가 이야기후 고민하여 생각해낸 방법이
집앞의 산을 아침에 오르는 것이었다. 

산도 애들 걸음으로 약 1시간 20분이면 충분이 갖다 올수 
야트막한 산이라 아빠와 아이들과의 대화시간 갖기로는 충분하고
산에 갖다오면 애들아빠도 출근시간 늦지 않고 
큰애도 학교 갈 시간 충분하고.
더불어 운동량이 적은 큰애의 비만에도 도움이 되고
아침마다 상쾌한 공기 마셔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겠다 싶어 택한 방법이다.

.....이렇게 아침마다 아이들과 남편이 산책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겨울동안 일이 바빠진 아빠 때문에 
부자간의 같이 있는 시간이 없어진 아이들이 
아버지의 정에 많이 굶주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부부가 같이 직장을 다녀도 아빠보다 엄마와 시간을 많이 가져서인지
아니면 엄마대신 계시는 할머니에게서 살뜰한 정을 느껴서인지  
엄마의 빈자리는 애들이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은데. 
남자인 두 아이는 가끔씩 저녁시간 아빠의 빈자리를
말로는 하지 않고 온몸으로 표현을 해댔다.

애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 저녁이면 
큰애는 8시부터 침대에서 딩굴딩굴하며 책도 읽었다가 
다시 거실로 나와 식탁에 앉아 그림도 그렸다가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심심해 한다. 
엄마인 내눈에는 그 시간에 아빠가 있어야 할 자리인 것처럼 보인다.
그 시간에 애들 아빠가 있었으면 몸싸움도 하고 
남자들끼리 통하는 이야기(바둑, 컴퓨터 게임, 친구간의 일등)
하며 와자지껄 큰웃음소리가 날텐데 
엄마하고는 몸싸움도 못하고 바둑이야기도 못하고 게임이야기등은 
통하지 않고 고작 학교이야기나 숙제등을 이야기 하고 
아! 딱하나 같은 취미인 책을 좋아하는 것은 있으나 
혼자 읽고 가끔씩 이야기하니 한참 활동력이 왕성한 초등학생인 큰애는 
가끔씩 온몸으로 저녁시간 아빠의 빈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아직 두돌도 되지 않은 둘째도 마찬가지다.
전화벨소리만 울려도 부리나케 달려가 수화기를 들고
아빠! 아빠!하니.......
엄마가 자주 읽어주는 책보다는 그래도 가끔씩 아빠가 읽어주는
책이 둘째에게도 더 기억이 생생하고 
엄마와 훨씬 많이 나누는 스킨쉽보다는 
가끔씩이지만 아빠의 투박하고 약간은 거칠은 스킨쉽이 더 좋았는지 
아빠가 없는 밤시간이면 부리지 않았던 짜증을 한번씩 부린다. 
블록을 가지고 놀아주어도 놀아주는 방식이 아빠와는 다르니
아빠의 자리를 느끼는 건 둘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여름이라면 밤8시에도 캄캄하지 않아 더위를 이유삼아 
아파트쉼터나 놀이터에 가서 베드민턴이나 줄넘기도 하고
아파트 옆의 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느끼면 
애들 마음도 넓어지고 편안해지며 아빠의 공백을 덜 느낄텐데.
아직은 봄이라 너무 캄캄하고 아빠의 빈자리는 
내가 애들을 아무리 이해하고 애들생각에서 같이 놀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성이 다른 여자인 내가 어떻게 해볼수가 없는 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자연을 벗하는 시골에나 살면 애들이
바쁜 아빠의 빈자리를 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은 지금의 여건이 허락하지는 않고 이래 저래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언젠가 밤에 모처럼 남편이 일찍 들어와서 같이 저녁먹고 
같이 목욕을 하고 거실에서 애들의 몸을 닦아주고 있길래
엄마인 나도 여유있게 맛사지를 하고 세면하고 나와보니
거실한쪽의 흔들의자에 앉아 아빠는 신문을 보고 있고
둘째는 아빠가 앉은 흔들의자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란 것은 둘째의 표정이었다.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정확히 발음도 되지 않은 애들의
언어로 아빠에게 무어라고 물으면서 책을 넘기고 있는 모습.

큰애는 거실에 누워 크레파스와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서 
쫑알 쫑알 그림에 대해 아빠에게 설명을 하고 있고.

그 날밤의 애들표정을 본 내 느낌과 애들이 평소에 원하고 있는 
아빠의 빈자리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남편도 애들에게 자기가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여 고민중이란다.

그리하여 우리부부가 고민하고 생각해낸 방법이 
아침잠이 없는 아이들과 함게 남편이 아침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아이들은 대환영이었지만 사실 남편은 피곤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산책이 3주가 넘어가자 남편은 이제야
좀 적응이 된다 하면서 애들이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애들 옷챙겨 입히고 등산용 아기베낭에 
둘째를 메고 아침산책을 다녀온다.

아침산책을 시작한 후 덩치로는 한덩치 하여도 소심한 면이 있는 
큰애의 표정이 훨씬 밝아지고 산을 오르면서 체력에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생활하는 모습이 활기차서 좋고
무조간 밖에만 나가면 좋아하는 둘째아들은 
제 아빠등에 업여 산에 갔다 오는 
날이면 "엄마 짹짹이는 나무에 살지. 나무는 산에 있지"
"짹짹짹 빠이~빠이~했지" 하면서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동안 꾸준한 아침산책으로 남편도 많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고 아빠의 역할을 열심히 하려는 남편의 모습에
가끔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마저 우러난다.
나도 가끔씩 따라가지만 평소 운동량이 부족해서지 출근하면
조금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 최대의 기쁨인 동시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사회를 올바르게 보는 건전한 시각을 키워줘야 하는 
책임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살아가는 한순간 한순간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직접 피부로 느끼는 시각적인 교육일 거라는 생각은 
어느 부모나 다 느끼고 살지 않나 싶다. 
날마다 같이 생활하는 부모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애들이 자연스럽게 삶을 터득할것이니 
한순간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의 사랑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랑물을 먹는  
우리의 아이들이 사랑이 많은 아이들로 자라나
그 사랑을 밖으로 돌릴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하길 바래본다.